Alaska 기행  최규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제15회 동창생들은 금년에 졸업 55주년을 맞았다. 우리는 졸업 25주년이 되던 해 우리 는 감사한다라는 산문집을 낸 후로 5년마다 한 차례씩 기념문집을 발간하고 기념행사를 가졌다. 기념행사는 미국과 서울에서 번갈아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지난번 50주년 때에는 금축제(Gold Anniversary)를 서울에서 성대하게 치루었으므로 이번에는 미국으로  건너갈 차례였다. 미국 동문회의 강창욱회장과 국내 동창회의 심영보회장이 오랫동안 의론한 끝에 Alaska에서 관광을 하면서 기념행사를 갖도록 결정했다.

여행은 2016723CanadaVancourver항에서 출발하는 78일 간의 크루즈 관광과 이에 계속하여 Anchorage를   거점으로 하는 45일 간의 육지 관광을 하도록 하였다. 국내회원 8명과 그 가족 7, 그리고 미국회원 21명과 그 가족 18 도합 29명의 회원과 가족 25, 그리하여 총 54명이 참가하였다. 그 가운데는 사정에 따라 육지 관광에는 참가하지 못한 분들이 28명이 있었지만, 총계 54명의 우리 동창 가족이 Coral Princess호에 타서 졸업 55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 공식 기념만찬을 포함하는 또 다른 행사를 10월에 서울에서 하도록 계획되어 있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미국에서, 그러므로 미국 회원들이 훨씬 많이 참석한 가운데 마련되었으니 우리에게는 더욱 뜻 깊은 행사가 되었다.

졸업 55주년 기념행사

동창회의 기념행사는 멀리 떨어진 휴양지에서 며칠 묵으면서 갖는 것도 좋지만, 이번처럼 크루즈 관광을 하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이었다. 7일간 한 배 안에서 같이 먹고 자고 지나는 여행이므로 서로 다른 일정을 잡고 있더라도 하루에 몇 번 씩은 마주치게 되어 있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이 삼삼오오 자리를 같이 하여 서로의 삶을 펼쳐보이 면서 생각을 나눌 수도 있었고, 이번에 참석하지 못 한 친구들의 근황을 알아볼 수도 있었다. 특히 저녁 식사 후에는 특별히 마련한 자리에서 우리끼리 만의 모임을 가질 수 있어 마음 놓고 즐길 수 있었다.

7층에 있는 Hearts and Minds"란 방은 약 60명의 좌석을 갖춘 방으로, 결혼 예식을 위한 방이지만 다른 행사가 없을 때에는 우리가 전용으로 쓸 수 있었다. 이곳은 저녁 식사를 일직 끝내고 7시경부터 약 두 시간동안 갖는 우리 동창 모임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박승균동문의 재치 있고 능란한 인도에 따라 동문 한 사람씩 나와서 재간을 부리는 순서를 가졌다. 첫 번째 순서로는 예에 따라 최길수동문의 부인인 김문자교수의 선창으로 서울대학교 교가를 합창하였다. 그 다음으로는 출석번호(이름의 가나다 순)의 역순으로 한·미 동문이 교대로 소감을 발표했다. 혹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성공담을 이야기하고, 혹은 자기의 신앙 간증을, 혹은 봉사활동의 즐거움을, 혹은 투병생활의 어려움을 피력하고, 또는 마누라 자랑을 요령 있게 늘어놓았다. 누구는 재치 있는 만담으로 좌중을 즐겁게 하기도하며, 또 어느 친구는 미래의 꿈을 펼쳐 놓아 듣는 이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하였다.

이번에 참석하지 못한 동문들의 축하 메시지를 사회자가 낭독하는 순서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이재흥동문이, 그리고 미국에서는 최공창동문이 보내어 왔는데, 하나 같이 구구절절 우리의 심경을 울리는 감동적인 시었다. 또 마지막으로 사회자 박승균동문이 을픈 자작 헌시는 오래도록 우리의 가슴 속에 머무르고 있다.

첫 날의 막판에는 이한수동문의 선창으로 모닥불 피워놓고를 합창하면서 눈시울을 적시기도 하며, Heiden Roeselein"을 불러대면서 옛날의 호기를 되내기도 했다. 어느 날에는 아예 가라오게를 설치하여 노래자랑에 들어갔는데, 손기용동문의 부인 이종숙선생이 100점 만점을 받아 모두의 갈채가 쏟아지기도 했다. 마지막 날 저녁에는 이한수동문이 작사한 이별의 노래를 Auld Lang Syne의 곡조에 맞추어 합창하므로 대미를 장식했다.

필자는 우리 동문들이 이번에 펴낸 기념문집 산수(傘 壽)에 돌아보다의 독후감을 피력했다. 팔순에 접어들면서 점점 익어가는 우리 동문들의 글재주를 칭찬했다. 수필, , 기행문, 회고담, 독후감, 영화 감상문, 신앙 간증문, 강의록, 연구발표문, 유언장 등 다양한 장르의 글에서 진솔한 삶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특히 정신과학을 전공한 친구들의 글들은 하나같이 주옥과 같이 빛나고 있었다고 찬탄을 마지않았다. 그러고는 5년 전 금축제 때 내가 제안한 내용을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앞으로 5년 후면 우리가 맞을 금강축제(Diamond Anniversary)에는 금강산(Diamond Mountain)에서 기념행사를 치루고, 한수웅동문이 제안한대로 함흥에 가서 그가 제공하는 함흥냉면을 대접받자고 했다. 그리고는 내친 김에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까지 올라가서 애국가를 봉창하고, 나라와 겨레를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내려오자고 제안했다. 몇 몇 동문은 이게 과연 가능한 것 일가는 의아스러운 얼굴을 했지만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169)는 말씀을 상기시키면서 우리 모두가 이 일을 위하여 기도하고 노력하면 못 할 것도 없다면서 말을 마쳤다.

Alaska의 관광 행사

Alaska는 미국의 50개주 가운데 가장 높은 산들이 있고, 가장 넓은 면적의 국립공원을 가졌으며, 가장 많은 빙하와 가장 긴 해안선을 가진 주이다. 근대 문명의 역사가 짧은 만큼 공해도 적고 개발의 여지가 많아 미국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변경(Last Frontier)이란 별칭을 갖고 있다. 연어(King salmon)의 고장이자 대게(King crab)의 주산지이므로 이곳에서는 이러한 해산물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번 여행은 여행사가 기획한 단체 관광여행이므로 처음부터 음식에 관하여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크루즈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음식의 양에는 제한이 없어 하루 종일 실컷 먹을 수 있었지만 싱싱한 연어나 푸짐한 대게요리는 구경도 하지 못했다. 심지어 선장이 초청한 정식 만찬에서 조차 투박한 연어 스테익크이나 비실비실한 게다리요리를 내는 정도이었다. 그나마도 다행스러운 것은

7층에 있던 Sabatini's Italian Restaurant에서 싱싱하고 맛있는 해산물 요리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던 것이다. 정철융동문이 특별히 초청한 만찬에서 Lobster tail의 삼색요리를 맛 볼 수 있었고, 이재승동문이 초청한 만찬에서는 Jumbo shrimpKing crab을 넣은 파스타요리를 맛있게 먹었다. 지면을 통하여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이번 Alaska관광여행에서는 여러 가지 교통수단으로 여러 곳을 다니면서 많은 경험을 하였지만, 이것을 대체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분야로 나누어서 간략히 정리하고져 한다.

 

I. 역사와 유적의 탐사

첫 번째 탐사는 이곳의 원주민인 Native Americans (American Indians)들의 삶과 그 흔적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처음 기항지인 Ketchikan에서는 Totem Bight State Historical Park에 가서 Tlingit Indian들의 문화유산인 여러 가지 모양의 장승(Totem Pole)을 관람했다. 아래에 연어를 밟고 위에는 독수리를 이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한 장승은 안개여인 (Fogwoman)이란 별명을 갖고 있었는데 자신이 안개로 변장하여 연어들을 강으로 유인한다는 전설을 갖고 있기도 했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Totem Poles를 수집한 곳이며, 지금도 장승을 만들고 있어 공원을 돌아보면 장승을 만드는 목재들과 기구들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되어 있었다. 그 밖의 Indian들의 유적은 Anchorage MuseumPalmer Museum of History and Arts에서 볼 수 있었다. Anchorage MuseumAlaska에서 가장 크 박물관으로 Indian들의 역사나 문화 뿐 아니라, Russia가 점령하던 시대, 금광을 개발하던 시대, Exxon Valdez의 기름유출사건 등의 유적들도 잘 전시되어 있었다. 박물관내의 북극연구소(Arctic Studies Center), 과학관(Science Center), 그리고 Alaska의 토속 현대회화 전시관등도 한 번씩은 볼만한 곳이었다.

기독교 유물로는 두 번째 기항지인 Juneau에서 호숫가에 지어진 통나무교회(The Chaple by the Lake)를 관람했다. 비록 역사적인 의미는 별로 없었지만 이 조그마한 개신교 예배당에서 호수를 내려다보는 경치가 한 폭의 그림과 같이 아름다웠다. Talkeetna에서 Anchorage로 귀환하는 길목에서는 이곳이 Russia의 지배하에 있을 때 Athabascan Indian들에게 전파한 Russia정교회의 예배당, St. Nicholas Orthodox Church를 방문하여 300년 전의 감회를 새롭게 느꼈다.

Alaska의 역사적 유물로는 금맥을 찾기 위하여 헤매든 이들의 발자취와 금광을 찾아 거부가 되었던 이들의 유적을 빼놓을 수 없다. 세 번째 기항지인 Skagway시에서 Skagway강을 왼쪽으로 끼고 약 2 mile을 올라가면 Gold Rush Cemetery가 나타난다. 18세기 말 금광을 찾아다니다가 목숨을 잃은 분들의 묘지들이 다양한 비문들과 함께 어지럽게 늘려 있다. 그 근처에는 그들이 찾던 금광석의 모조품들이 즐비하게 흩어져 있어 역사의 아이러니를 실감하게 했다. 거기에서 다시 산을 내려와 Skagway강을 건너면서 Klondike Highway를 달려 Skagway Valley를 내려다보면서 White Pass를 따라 산 정상으로 올라갔다. 주위의 수많은 빙하와 폭포를 감상하며 Klondike Gold Rush National Historical Park를 둘러보았다. 이 험하고 높은 곳까지 금맥을 찾아 달려온 개척자들을 생각하면 숙연한 느낌마저 들었다. 산 정상에서는 CanadaYukon국경을 넘어가 파노라믹하게 펼쳐진 넓은 산과 계곡을 감상하고 국경을 다시 건너올 때는 인증 사진도 찍고 왔다. Skagway시내로 다시 돌아와서는 Gold Rush 초창기 창녀의 집으로 유명한 Red Onion Saloon도 들러보았다.

Alaska 곳곳에 Eldorado를 찾아 헤매던 개척자들의 흔적을 볼 수 있었지만 Mat-su ValleyHatcher Pass 에 있는 Independence Mine State Historical Park에서는 또 다른 경험을 하였다. 1986Robert Lee Hatcher 가 금광을 발견하여 1941년 광산을 폐쇄할 때까지 34,000 ounce의 금을 생산했던 Independence Mine의 시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깊은 갱도에서 금광석을 캐내어서 제련할 때까지의 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어 좋은 견학이 되었다.

II. 야생 동식물(Wild Life)의 관찰

연어와 물개의 나라, 곰과 독수리의 고장인 Alaska를 찾을 때는 이 번 여행 중에 야생 동식물을 실컷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50여명이 미리 계획된 일정에 따라 움직이는 여행이다 보니 숲 속에서 어슬렁거리는 불곰(grizzly bear)나 연어를 낚아채고 도망가는 흑곰(black bear)은 한 마리도 볼 생각조차 못하고, 고래나 바다사자와 같은 해양생물은 꼬리조차 구경하지 못 했다.

우리가 살아있는 연어를 처음 목격한 것은 첫째 기항지인 Ketchikan에서였다. 시내에서 동쪽으로 약 5 mile거리에 있는 Salmon Creek River에 가서 강 밑바닥을 자세히 들여다봤더니 큰 연어들의 행렬이 보였다. 수 십 마리의 연어들이 아주 느리게 강 위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King Salmon으로 바다에서 올라와 강 상류로 이동하는 중이라 했다. 그 강위 하늘에는 흰머리독수리(Bald Eagle)들이 먹이를 찾아 날아다니는 장관을 구경할 수 있었다.

연어의 무리들이 급류를 거슬러서 뛰어 올라가는 광경을 구경하고 싶었는데 이것은 Anchorage근교의 Ship Creek Salmon Viewing Point에서 마음껏 즐기면서 볼 수 있었다. 그 곳에는 대규모 연어 알 부화장(William Jack Hernandez Hatchery)시설도 있었다. 그 곳에서는 산란하기 위하여 올라온 연어를 잡아 그 알을 채집하고 큰 욕조 속에서 수정시키고 부화시킴으로 수 억 마리의 치어(稚魚)를 생산하여 바다로 내보내는 일을 한다. 이 시설 내부도 견학하고 연어의 생태에 관한 공부도 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Pacific Salmon(태평양연어)에는 다음과 같은 다섯 종류가 있고, 그 모양, 크기, , 생태 등이 다 다른 것을 알게 되었다.

1. King (Chinook) Salmon

2. Coho (Silver) Salmon

3. Sockeye (Red) Salmon

4. Chum (Dog) Salmon

5. Pink (Humpy) Salmon

자연 상태에서 서식하고 있는 야생동물은 산이나 개울을 따라 난 산책로(trail)를 탐험하지 않으면 만나볼 수가 없다. 그런데 Anchorage시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야생동물보호센터(Wildlife Conservation Center)가 있어 그 곳에서 몇 가지 야생동물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곳은 상처를 입었거나 병에 걸린 야생동물을 치료하기위하여 큰 울타리를 치고 보호하다가 원 상태로 회복되면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일반 관광객도 도보로 혹은 차를 타고 다니면서 이들 동물들을 관람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불곰(Grizzly Bear), 물소(Buffalo), Caribu, Moose, 늑대(Wolf), 산양(Mountain Goat)등을 구경하였다.

해양생물의 관찰도 최용성동문 내외가 다녀온 것처럼 선택 관광으로 특수 유람선을 타고 고래구경을 간다든가, 근해의 고급빙하관광을 가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었다. 우리는 Tidewater Glacier에서 떨어져 나온 빙산위에 앉아서 떠내려 오는 Porpoise를 먼발치에서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하여야 했다. 그러나 나중에 Seward에 가서 해양생물관(Alaska Sealife Center)에 들러 바다사자(Sea Lion), 수달(Sea Otter), 돌핀(Dolphin), 물개(Seal), 문어(Octapus)등과 같은 대형 수중 동물들을 바로 곁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 바로 수족관 넘어 바다 위에는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바다 새(Shorebirds)들이 날아다니는 장관도 구경하였다.

야생식물(Wild flower)에 대하여는 대체로 관심을 갖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데 자세히 보면 재미있는 식물들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여행에서도 SkagwayWhite Pass산정에서 파노라믹한 경치를 보면서 발치에 피어 있는 예쁜 Fireweed, Nootka Lupine, Golden Rod등의 들풀들을 관찰하고 사진에 담기도 하였다. 시내 곳곳에 피어 있는 물망초(勿忘草, Forget-me-not)Alaska의 주화(州花, State Flower)인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III. 자연경관의 감상

자연경관이 좋다고 할 때에는 물이 있고, 그 뒤에 나무숲이 있고, 또 그 뒤에 산이 보일 때를 말한다. 물은 강도 좋고, 호수도 좋으며, 바다이면 더욱 좋다. 나무숲은 우거진 삼림이면 좋은데, 침엽수가 곧게 뻗어 자란 곳도 좋지만, 가을철에 단풍이 예쁘게 드는 활엽수림도 좋다. 그 뒤의 산은 높고 험하면 절경이지만 눈이 덮이거나 빙하가 깔려 있으면 금상첨화이다.

이번에 우리가 구경한 Alaska는 이 모든 절경의 요소를 두루 갖춘 천혜의 관광지였다. 어디를 가나 강과 호수와 바다를 만나고, 어느 쪽을 쳐다보아도 우거진 삼림이며, 그 뒤로는 좌우로 빙하를 낀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 있었다. 다만 날씨가 따라주지 못하여 아름다운 경치를 마음껏 즐기지는 못하였지만 그래도 비다운 비는 맞지 않고 관광을 마쳤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1. GlacierFjord의 땅 Alaska

우리가 가장 먼저 접한 빙하는 두 번째 기항지이자 Alaska의 주도(州都)JuneauMendenhall Glacier였다. 이빙하는 Juneau Icefield로 불리는 큰 빙하 판에서 눈과 얼음이 Tongass National Forest의 계곡을 타고 내려와서 Mendenhall Lake를 이루는 아름다운 빙하로서 전형적인 Valley glacier이다. 여러 개의 산책로가 호수주변에 까지 연결되어 있어 더 아름다운 경관에 접근할 수도 있었지만 비가 내리는 관계로 산책은 포기하고 종합안내소(Information Center)에서 빙하에 관한 영상물을 관람하면서 많은 지식을 쌓았다. 여기에서 안 것이지만 빙하에는 바다로 직접 떨어져서 빙산(Iceberg)을 만드는 Tidewater glacier와 계곡사이로 내려와서 작은 호수를 이루는 Valley glacier가 있다. Valley glacier가 산기슭의 넓은 평원에 빙판을 이루는 것은 Piedmont glacier라고 한다(piedmont이란 단어는 이태리어로 산록[山麓]을 뜻함). 높은 산에 수 백 년 동안 거대하고 중후한 얼음 층을 이루어 모든 빙하의 원천이 되는 곳을 Icefield라고하며, 산 계곡 가운데 주발 같이 생긴 분지에 걸려서 얼음 계곡을 이루고 있는 빙하를 Hanging glacier, 혹은 Cirque glacier라고 부른다(cirque란 단어는 불어로 원곡[圓谷]을 뜻함).

두 번째의 빙하관광지는 Glacier Bay National Park and Preserve이었다. Skagway에서 남쪽으로 Lynn Cannal을 다시 빠져나와 Icy Strait를 통하여 조금 북쪽으로 항해하다가 Glacier Bay로 진입했다. 그 어귀의 국립공원안내소 근처에서 National Park Ranger들을 탑승시켜 그들의 설명을 들으면서 계속 북진하여 Glacier Bay National Park 깊숙이 들어갔다. 항로 양쪽으로 우거진 삼림과 빙하를 끼고 북쪽 끝까지 운행하였는데, 먼저 왼쪽 구석의 John's Hopkins Glacier를 관람하고 돌아 나와서 바른쪽 구석의 Margerie Glacier를 구경했다.이 두 빙하는 이 Glacier Bay의 대표적인 빙하로서 모두

Juneau Icefield에서 발원하여 내려오는 대표적인 Tidewater glacier이다. 지구의 온난화 때문에 그 규모가 점점 줄어든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빙하의 주변을 두세 바퀴 회전하는 유람선의 방향을 따라 다니다가 Margerie GlacierCalving현상을 목격하고 동영상에 담았다. 마치 천둥치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면서 빙하 벽이 깨어져 바다에 떨어지는 관경은 적어도 한 번은 꼭 보아야할 경관이었다.

Glacier Bay를 빠져나온 유람선은 Alaska의 동남해안을 끼고 계속 북진하여 드디어 Prince Williams Sound에 들어섰고 저녁 무렵에는 그 유명한 College Fjord에 진입했다. 배 앞머리의 좌석에 앉아 관망했더니 왼쪽으로 황량한 삼림의 흔적이 나타났는데 이는 Ghost Forest라고 해서 1964년 대지진의 상처라고 했다. 1964327, 성금요일에 진도 9.2의 대지진이 일어나 근처의 삼림이 온통 폐허가 되었을 뿐 아니라 그 일대의 생태계에도 큰 변화를 일으켰다고 했다. College Fjord를 더 깊이 항해하니 왼쪽으로 6개의 Tidewater glacier가 눈에 들어왔는데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Tidewater glacier가 밀집되어 있는 곳이라 했다. 깊숙이 끝에 도달하니 Harvard Glacier를 가운데 두고 왼쪽에는 Smith Glacier 오른쪽에는 Yale Glacier가 펼쳐져 있었다. 이 빙하 둘레의 산들은 모두 빙하가 내려올 때 바위가 침식되어 생긴 Fjord로 되어있어 보기에 매우 아름다웠다. College FjordGlacier Bay에 비하면 규모도 작고, 웅장한 빙하가 있는 곳은 아니지만 모든 빙하에 미국의 전통 있는 대학의 이름이 붙어있어 유명세를 타고 있다.

Cruise Tour를 마치고도 Alaska의 관광은 빙하의 관광이었다. 크루즈관광의 종착지인 Whittier항과 육지관광의 거점인 Anchorage사이에 있는 Girdwood에서도 빙하를 구경했다. Girdwood시내에서 Alyeska Resort로 들어가서 케이블카(Aerial tram)를 타고 해발 2,300 feet에 있는 산정식당에 올라가서는 Seven Glaciers를 관광했다. Alyeska Glacier, Eagle Glacier, Goat Glacier, Crow Glacier를 포함한 7개의 빙하가 산중턱에 매어달려 있어 전형적인 Hanging glacier(Cirque glacier)를 바라볼 수 있는가하면, 그 반대편으로는 넓은 광야가 펼쳐져 있고, 그 넘으로 Turnagain Arm의 갯벌과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또 다른 빙하는 Chugach산맥의 북동쪽으로 내려오는 Matanuska Glacier였다. Anchoage 북쪽에 있는 Alaska 제일의 농업도시인 Palmer를 지나 Glenn Highway를 타고 동쪽으로 가다가 Matanuska Valley 로 들어가니 Matanuska Glacier의 거대한 모습이 나타났다. 전형적인 Piedmont glacier였는데 Alaska에서 가장 큰 육지빙하라고 했다. 빙하가 산록으로 흘러내려 거대한 빙판을 이룬 곳에 Moraine(빙퇴석[氷堆石])이 덥혀 있어 계곡 입구에서 약 1 mile정도 걸어가면 빙하 위를 걷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2. Alaska Railroad를 따라 미항 Seward.

빙하의 관광은 그런 정도로 하고 이번 여행에서 절대로 빼어놓을 수없는 구경이 또 있다. Anchorage에서 Seward로 가는 기차여행이 그것이다. 20세기 초 Gold Rush가 한참일 때 Seward에서 Fairbank에 이르는 470 mile의 철도가 건설되었다. 역사적으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Alaska Railroad가 운영하고 있다. 이 철도가 건설되기 전에는 SewardAlaska에서 가장 큰 도시였는데 이 철로를 통하여 석탄이 운송되고 금광개발이 활성화 되고는 Anchorage에 사람들이 모이고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Alaska 제일의 도시가 바뀌게 되었다.

Anchorage에서 Seward까지의 114.3 mile을 기찻길로 여행했다, 왼쪽으로는 아기자기한 Chugach State Park와 장대한 Chugach National Forest가 있고, 오른쪽으로는 Turnagain Arm의 갯벌과 바다 건너편으로 Kenai Mountains의 빙하들이 보였다. Portage에 이르러서 부터는 양쪽으로 깎아지른 덧 한 계곡을 지나면서 피요르드와 빙하, 폭포와 계곡, 호수와 강, 교량과 터널 등을 내다보면서 달렸다. 열차는 양면이 모두 유리로 되어 있고 천정 일부만이 가리어져 있어 경치를 구경하기에는 아주 좋았다.

펼쳐진 절경을 따라 한참 동안 남쪽으로 내려오니 Resurrection River가 나오고, 드디어 Resurrection Bay 에 둘러싸인 Seward항이 나타났다. Resurrection Bay는 수 천 년의 빙하활동으로 생긴 깊은 Fjord로 형성된 만이다. 이곳은 겨울에도 얼지 않으므로 Seward항이 부동항의 이점을 누릴 수 있었다. 17924월 이곳을 탐험하러 왔던 Alexander Baranov일행이 심한 풍랑을 만나 피하여 있다가 마침 부활절 날에 폭풍이 멎고 날씨가 개여 이곳을 Resurrection Bay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Seward항은 Alaska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로서 미국이 Russia로부터 Alaska를 사들인 교섭을 한 당시의 국무장관 William Henry Seward의 이름을 따서 붙인 곳이다. 여기에서는 Alaska Sealife Center를 관람하고, 부두에 가서는 잡은 생선을 처리하여 가공하는 시설 등을 둘러보았다. 1964327, 성금요일에 일어난 대지진으로 희생당한 이들을 추모하는 기념물도 관람하였다. 다만 이곳에서 시작하는 Kenai Fjord National Park를 둘러보는 Kenai Wild Tour를 하지 않은 것이 후회막급이었다. 이 선택 관광을 하려는 지원자가 너무 적어서 계획이 취소되었기 때문이었다.

 

3. Denali National Park and Preserve

이번 여행의 Highlight는 마지막 날의 Denali National Park의 관광이었다. 원래 이번 여행은 Talkeetna에 까지만 가는 것으로 기획되어 있는 상품이기 때문에 날씨가 화창하게 개였을 때만 Denali산의 정상을 겨우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여행안내자의 설명에 따르면 Denali산을 제대로 구경하기 위해서는 국립공원 가까이까지 가서 적어도 하루는 자고 오는 일정이라야 한다고 했다.

이번 여행 중의 날씨는 처음부터 마지막 날까지 우리 편이 아니어서 계속해서 흐리거나 비가 오락가락했고, 가끔 햇빛이 비치면 모두가 환호성을 올릴 정도였다. 마지막 날도 출발지인 Anchorage에는 가랑비가 뿌려 Denali 산의 용태는 구경도 못할 각오로 출발했다. 그러나 우리 일행이 북쪽으로 올라 갈수록 비도 그치고 구름도 흩어져서 가까운 곳의 관광에는 지장이 없을 정도로 되었다.

Talkeetna에 가는 도중에 Wasilia에 들러 Iditarod Race Headquarter(개썰매본부)를 방문했다. 이곳은 1925Nome에서 집단 발생한 Diphtheria를 치료하기위한 항독혈청 수송에 지대한 공을 세운 개썰매 떼를 기념하기위하여 Iditarod Sled Dog Race(개썰매대회)를 주관하는 곳이다. 지금도 겨울철이면 Seward에서 시작하여 Nome까지 가는 대회가 열리는데, 여기에서 우승하는 이의 영예는 대단하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본부에 들러 동영상으로 그 광경을 구경하고, 일부는 일인당 거금 $10.00 씩 내고 개들이 끄는 바퀴달린 차(Wheeled Cart

Sled by Dog Teams)를 타고 근처의 숲을 한 바퀴 돌면서 겨울에 개썰매를 타는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Wasilia를 출발한 우리 일행은 계속 북상하여 Talkeetna에 도착했다. TalkeetnaAnchorage에서 Denali국립공원으로 가는 Parks Highway의 약 중간 지점에 있는 마을인데, Chulitna RiverTalkeetna RiverSusitna River로 합류하는 지점이다. Talkeetna란 말은 원주민인 Athabascan의 말로 강들이 만나는 곳이란 뜻이다. 우리는 이곳에 도착하여 Talkeetna River Park에 모여앉아 준비해온 도시락으로 허기를 메운 뒤, 일부는 수상비행기로 주변 관광을 하는가하면, 대부분의 동문들은 시내관광을 했다. 우리 부부를 포함하여 최길수동문 부부, 김성준동문 부부, 그리고 손기용동문의 부인과 서휘열동문의 부인, 이렇게 8명은 Talkeetna Air Taxi를 타고 Denali National Park and Preserve의 일대를 약 1시간 30분에 걸쳐 관광하였다.

날씨가 좋으면 Talkeetna에서도 멀리 Denali산을 볼 수 있다지만 우리가 갔을 때는, 비는 개였지만 구름이 사방을 덥고 있어 명산 Denali를 구경하려면 하늘 높이 올라가서 내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15인승 경비행기를 타고 Talkeetna공항의 활주로를 이륙하자 강들과 호수, 무성한 숲들과 높고 낮은 산들이 보이더니 금방 황량한 동토(凍 土, Tundra)가 아래로 펼쳐졌다. 얼마를 더 날아가니 어느새 비행기는 구름을 뚫고 올라가서 밝은 햇빛의 마중을 받았다. 이제는 온 사방이 흰색이로 덮여있고 멀리서는 크고 작은 빙하들이 눈을 부시게 했다. 좀 더 올라가니 대망의 Denali산이 눈에 들어오고 그 주위에 기암괴석으로 만들어진 산들이 나타났다. 비행기 조종사가 Denali산 가까이에 가면서는 몇 바퀴 회전을 하면서 모두가 산의 웅장한 모습을 보게 해 주더니 어느 골짜기의 빙하위에 비행기를 내려앉혔다. 비교적 넓고 평평한 빙하인데 두터운 눈이 덮여 있어서 비행기가 착륙할 때에도 전혀 요동함을 느끼지 않게 조용히 내렸다. 우리 비행기가 내리고 나서도 약 5분 간격으로 두어 대의 비행기가 더 내렸다. 그 곳은 등산객들이 Denali산정으로 올라가는 Base Camp가 있어서 등산장비를 갖고 내리는 친구들도 볼 수 있었다.

이곳이 바로 북미대륙에서 가장 높은 Denali산이다. 높이가 20,320ft (6,194m)인 이산은 원래 Athabascan Indian들이 The High One" (높은 분), 혹은 The Great One" (위대한 분)이란 뜻으로 Denali라고 불렀다. 그러던 것이 1896William Dickey란 금광 탐사자가 그해 대통령후보인 Ohio주 상원의원 William McKinley의 이름을 따서 McKinley산이라고 명명하여 100여 년 동안 그렇게 불리어왔다. 그러나 Alaska의 원주민들을 위시하여 Alaska주 의회에서까지 원래의 이름 찾기 운동을 벌려왔다. 한때 산은 McKinley, 공원은 Denali로 부르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2015Obama대통령의 Alaska방문을 계기로 Denali산이란 이름을 되찾고, 이제 McKinley산이란 이름은 지도상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하여튼 이 웅장하고 신비롭기까지 한 Denali산 중턱 계곡에 내려선 우리들은 주변경관을 감상하고, 발목에 까지 빠지는 눈 위를 걸어 다니면서, 기념사진을 찍고, 계속해서 내려오는 빨간색의 예쁜 경비행기를 처다 보느라 정신이 팔려버렸다. 어느덧 돌아갈 시간이 다 되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김문자교수가 선창하자 모두가 찬양의 노래를 불렀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 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 하네

이어서 필자의 인도로 모두들 감사와 소망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오늘 저희 일행을 여기 Denali산기슭에 데려오셔서 하나님의 웅장한 창조세계를 보고 즐길 수 있게 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미국에서는 이 아름다운 자연을 잘 보호하고 그 축복을 오랫동안 간직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주게 해 주소서.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백두산과 금강산과 같은 아름다운 곳을 마음 놓고 구경할 수 있도록 하루 속히 남북통일을 이루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비행기가 내려갈 때는 조종사가 일부러 산모서리를 스쳐가듯 곡예비행을 함으로써 꼭 바위에 부딛힐것 같은스릴도 만끽할 수 있었다. 내려오는 길에서는 아래에 깔려 있는 Denali National Park의 강과 빙하, 그리고 Denali National Forest의 울창한 삼림을 더 여유 있게 구경했다. 운이 좋으면 곰이나 사슴을 볼 수도 있다고 했지만 그것은 과욕이었고, 좋은 날씨에 안전하게 비행을 할 수 있게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다시 감사를 드리면서 착륙하니 많은 동문들이 따뜻하게 마지 해 주었다. 이번 Alaska여행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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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 동기 관광 여행기

대학 졸업 55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우리나라 남해안 몇 개 도시를 탐방하는 시간을 가졌다. 미국에서 이재승 동문 내외와 박준환 동문 내외가 참석하고, 국내에서는 심영보 회장 내외,  일균 동문 내외, 홍창기 동문 내외, 주 흥재 동문, 그리고 우리 부부가 참가하여 모두 13명이 여행길에 올랐다. 3개월 전에 미국 Alaska에서 54명의 동문 및 가족들의 모임이 있었고, 5년 전의 우리나라 일주여행 때 이 남해안 일대를 거쳐 갔으므로 이번에는 참여율이 저조할 것으로 예측하였는데 역시 그러했다. 그러나 13명의 단출한 식구가 28인승의 우등버스를 타고 34일의 일정으로 여유 있게 여행하였기에 오히려 더 오붓하고 재미있는 여행이 되었다.

더욱이 이번 여행은 5년 전에 갔던 곳은 될수록 빼고 새로운 명승지를 골라서 가도록 기획되었으며, 하나투어의 박을용 부장이 정성 드려 준비하고 자상하게 안내해 주었으므로 모두가 평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다만 34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순천, 여수, 남해, 통영, 거제의 5개 도시에 흩어져 있는 6개의 역사문화 유적지와 5개의 정원 공원을 탐방하였기에 일정이 너무 빡빡한 감이 있었다. 더욱이 4일간 모두 15,000여보의 비탈길을 오르내렸으니 80 노구에 무리한 감도 들었다. 그러나 이 힘든

일정에도 13명의 노인들이 한 사람의 낙오도 없이 무사히 돌아왔으니 스스로도 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모두가 조심하고 격려하며 기도한 덕분이라 생각하여 감사할 따름이다.

이번 여행길에서 나는 주요한 것을 한 가지 배웠다. 평소에 등산이라고는 별로 하지 않고, 다소 비만하다고 할 정도의 체구를 가졌으므로 가파른 비탈길은 너무 힘들고 숨이 차서 아예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에 아주 값진 것을 배웠다. 여수시의 금산에 있는 보리암으로 올라가는 길이 꾀 길고 가파르서 숨을 헐떡이고 있는데 주 흥재 동문이 따라오면서 요령을 일러주었다. 보폭(步幅)을 짧게 하고 빨리 걸으면 훨씬 수월하게 다른 사람들을 딸아갈 수 있으니 시험 삼아 해보라는 것이었다. 나로서는 처음 듣는 것이어서 반신반의 하면서 시험해보았더니 정말 효과가 있었다. 주 동문은 젊어서부터 나비채집을 위하여 전국의 산하를 누비고 다녔기에 지금도 산에 오를 때는 나비처럼 날아다니고 있는 것은 알았지만 이러한 비법까지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하여튼 이번 여행길에서 아주 요긴한 것을 배웠다. 주 박사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1. 교통

20161017일 오전 830분에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서 출발한 우리 버스는 금방 경부고속국도(1)로 들어가더니 천안에서 논산·천안고속국도(25)를 갈아타고 익산까지 갔다. 거기서는 익산·포항고속국도(20)로 완주까지 가서 순천·완주고속국도(27)를 타고 순천까지 갔다. 순천에서 여수, 남해, 통영, 거제까지는 주로 일반국도와 지방도를 이용하였다. 1021일 거제에서 일정을 끝내고 서울로 올라올 때는 통영·대전고속국도(35)와 경부고속국도(1)로 왔다. 고속도로에는 버스전용차선이 있어 차량이 정체되는 구간에서도 쉽게 통행하였으나 귀경길에 대전·오산 간에는 전용차선이 시행되지 않아 거의 한 시간동안의 지체를 겪었다.

이번 여행길에서는 우리나라의 교통망이 눈에 띄게 확충된 것을 보았다. 국내여행을 꽤 많이 다니는 필자로서도 익산·포항고속국도와 통영·대전고속국도는 처음 가보는 길이었고, 지도를 보니 그 밖에도 가보지 못한 도로가 곳곳에 신설되어 있었다. 새로 건설된 고속도로에서는 휴게소의 편의시설이나 도로의 토목공사가 그의 완벽하게 되어 있음을 보았다. 수많은 터널과 다리를 통과하였고 곳곳에 아름다운 산하와 방대한 개발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육지와 섬, 그리고 섬과 섬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를 건널 때는 다리에 관한 몇 가지 사실을 배우기도 했다.

웬만한 하천을 건너지르는 다리들은 강바닥에 교각(橋脚)을 촘촘히 세우고 그 위에 상판(上板)을 올려놓는데, 이것을 어떻게 구축하느냐에 따라 스래브교(Slab, 석판), 거더교(Girder, 대들보), 트러스교(Truss, 지붕틀), 아치교(Arch, 궁형틀), 라멘교(Rahmen)등 여러 가지로 구별한다. 한편 바다는 물길이 깊고 물살이 빠르며 큰 배가 지나다녀야 하므로 섬을 연결하는 교량들은 바다 가운데 주탑(主塔)을 세워놓고 굵은 쇠밧줄(Cable)로 바닥판을 지탱하는 공법을 써야한다. 그 공법에 따라 사장교(斜張橋, Cable-stayed Bridge)와 현수교(懸垂橋, Suspension Bridge)로 분류한다. 사장교는 주탑에서 Cable을 비스듬히 바닥판에 연결하여 그 장력(張力)으로 지탱하는 공법으로 이번에 지나다닌 돌산대교와 창선·삼천포대교가 이 공법으로 시공되었으며, 그 밖에도 국내에서는 서해대교, 거가대교, 인천대교 등이 사장교이다. 현수교는 주탑과 주탑 사이에 Main Cable을 늘어 뜨려 연결하고 여기에 Sub Cable을 이용하여 바닥판을 지탱하는 공법으로 이번에 지나다닌 남해대교와 이순신대교가 이 공법으로 시공되었으며, 그 밖에도 국내에서는 영종대교, 광안대교 등이 현수교이다. 1973년 완공된 남해대교는 국내 최초의 현수교로서, 그리고 2013년에 세워진 이순신대교는 국내에서 가장 긴 다리로서 유명하다.

우리 일행은 이순신대교를 건너가기 전에 묘도에 건설되어 있는 이순신대교 홍보관에 들러서, 그 전망대에 올라가 이 다리의 아름다운 전모와 주변의 경치를 구경하고 이 다리에 관한 여러 가지를 알아보았다. 이순신대교는 여수시 월내동에서 묘도를 거쳐 광양시 중마동을 연결하는 다리로서, 여수 쪽의 다리는 760m의 사장교로 건설되었고 광양 쪽의 다리는 2,260m의 현수교로 건설되었으며 그 간의 접속교가 3,054m로 되어 총 해상교량의 길이는 6,074m이다. 현수교 부분의 주탑은 H형 콩크리트 기둥으로 되어 있는데 그 높이가 270m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주탑이다. 두 개의 주탑간의 거리가 1,545m로서 이순신장군의 탄신년인 1545년을 상징하고 있다. 이 다리가 개통되면서 여수·광양국가산업단지의 수송거리가 60km에서 10km, 그리고 운송시간이 80분에서 10분으로 단축되었다.

2. 숙식

이번 여행 3일간의 숙박시설은 모두 수준급이었다. 여수에서는 Hidden Bay Hotel, 남해에서는 Hilton Golf & Spa Resort, 거제에서는 거제삼성호텔에서 숙박을 했었는데 이 세 곳이 모두 5성급의 아주 좋은 호텔이었다. 객실이며, 식당이며, 사우나시설이며, 외부전망이며, 안전성에 이르기까지 그의 모든 분야에서 나무랄 데가 없어 쾌적한 잠자리로 하루의 피로를 말끔히 풀 수 있었다. 퇴실할 때 가장 후한 점수를 망설임 없이 주었다.

음식의 평가는 사람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은 것 같았다. 아침은 호텔의 뷔페식이었고, 저녁은 대체로 호텔의 정식이었지만, 점심은 매번 그 지방의 대표적인 토속음식으로 준비되었었다. 순천에서는 녹차굴비 백반정식, 남해에서는 멸치쌈밥정식, 통영에서는 생선구이정식, 거제에서는 간장게장정식을 맛볼 수 있었다. 이러한 음식들은 대체로 한번 씩은 먹어볼만한 것이었다. 어떤 친구들은 음식의 간이 맡지 않았다고 했지만 아마 맛있게 먹는 방법에 익숙하지 않았던 탓도 있었을 것이다. 미국에서온 친구들 중에서는 게장을 먹고 배탈이 난 경우도 있고, 어떤 친구들은 멸치쌈밥이 맛없어서 아예 따라 나온 다른 음식으로만 배를 채운 이도 있었다.

필자는 평소에 서울에서도 즐겨 먹는 녹차 밥에 보리굴비를 곁들인 순천의 음식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이 음식은 싸목 싸목 해파랑이란 식당에서 먹었는데, 순천에서 살고 있는 우리 동창생 김창은 원장 내외분이 먼저 그 곳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간다는 전갈을 받고 그 날이 빨리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단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 두 손을 마주잡고 그 동안 지나온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허기를 달랬다.  싸목 싸목이란 그 지방 사투리로 천천히, 여유 있게 란 뜻이란다. 시장하기는 했지만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유 있게 즐기면서 먹었으니 정말 맛이 더 있었다. 더구나 김원장 내외분이 음식까지 대접해주셨으니 더욱 맛있었는지 모르겠다. 감사할 따름이다.

 

3. 역사 문화 유적지 탐방

1). 애양원(愛養園)과 손양원(孫良源)목사순교기념관

우리가 가장 먼저 찾아간 역사유적지는 여수에 있는 애양원과 이와 연관된 여러 곳의 유적지였다. 애양원은 한국판 선한 사마리아인(Good Samaritan)으로 지칭되는 Dr. Willey Hamilton Forsyth가 설립한 광주나병원이 여수로 이전하여 애양병원으로 개칭되면서 시작된 곳이다. 역사적 기술에 따르면 미국 남장로교 한국선교회에서 파송한 여러 명의 선교사에 의하여 이루어진 사건이다. 1904년 한국에 파송된 선교사이자 의사인 Dr. Clement C. Owen이 임지에서 폐렴에 걸렸을 때, 이를 치료하러 가던 Dr. Forsyth가 길거리에 쓰러져 신음하던 나병환자를 구하여 자기 말에 태워 광주로 돌아와서 치료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 와중에 Dr. Owen은 그 임지에서 순직하고 Dr. Forsyth는 동역자인 Dr. Robert M. Wilson등과 함께 자기들의 거처로 쓰고 있던 곳을 한센병(나병)환자들의 치료를 위하여 내어줄 정도로 헌신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1909년에 광주나병원을 설립하게 되었다. 그러나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1928년에 여수시의 해변마을에 병원을 이전하고 여러 가지 시설을 확충하여 1936년에는 애양병원으로 명칭을 바꾸어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우리 일행이 방문한다는 사실이 미리 통지되어 있어 우리가 도착할 때에 맞추어 애양병원의 김인권(金仁權)명예원장이 마중 나와 처음부터 끝까지 안내를 맡아주어 이 일대의 유적을 샅샅이 둘러볼 수 있었다. 김명예원장은 서울의대를 1975년에 졸업하여(29) 정형외과 전문의를 거쳐 이곳에 와서 봉사하면서 병원장까지 지내다가 지금은 정년퇴임하여 명예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학벌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서울의 버젓한 병원에서 편안한 의사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수련시절에 잠간 들러서 한센병환자들의 참혹한 현황을 목격한 뒤에 모든 것을 뿌리치고 이 곳 오지에서 어려운 이들을 돌보고 있다. 그러기에 그는 제1회 장기려의도상, 4회 성천상, 국민훈장 무궁화장등으로 보상을 받았지만, 아마도 이보다 훨씬 큰 상이 하늘나라에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김 원장은 우선 우리를 애양원 역사박물관으로 안내하였다. 그 내부에는 애양원 발전을 위하여 노력했던 사람들과 당시 환자들의 생활상을 찍은 사진들, 당시에 사용하던 의료기구등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 박물관으로 쓰고 있는 건물은 1926년에 광주에서 이곳으로 이전할 때 지은 건물로서 문화재청으로부터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그 맞은편에 있는 애양원예배당 건물은 1928년에 건립되었으나 1934년의 화재로 인하여 전소되었다가 1935년에 개축되어 등록문화재 제32호로 지정되었다. 이 교회는 1982년에 애양원 성산교회로 개명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여수애양병원은 구병원에 이어서 지은 현대식 병원으로 한센병환자 뿐 아니라 일반 장애인 환자도 치료하고 재활시키는 병원이다. 정형외과, 피부과, 마취통증의학과, 내과 등의 진료과목을 두고 있으며, 특히 인공관절 시술분야에서는 전국적으로도 수준급의 치료를 하고 있다. 김 원장의 안내로 병원 기념관에 전시되어있는 인공관절 치료의 기구들, 특히 Dr. Topple의 유물 들을 관람하고, 병원 정원에 서 있는 기념물들을 둘러보았다. 한쪽에는 애양원 백주년 기념조형물이 서있고, Dr. Forsyth부부와 Dr. Wilson의 동상도 서있으며, 다른 한쪽에는 초창기원장들의 기념비들이 광주에서 이전되어 설치되어 있었다. 널찍한 화강석좌대위에 포싸잍, 우월순, 보이열, 도성태원장들의 기념비가 옛날 모습 그대로 나란히 서있어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한편 병원 입구에는 세로로 길게 세워진 표지석에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출애급기 1526)는 성구가 새겨있어 이곳이 전인적 치유를 지향하는 선교병원임을 나타내고 있었다.

애양원에서 약 1km 떨어진 곳에는 손양원유적공원이 있고, 그 한쪽 가에 손양원목사 순교기념관이 현대식 건물로 지어져 있었다. 손양원 목사는 1938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1939년에 애양원 교회에 부임하여 구호사업 및 전도활동을 하다가, 1940년에는 신사참배를 거부한다고 일제에 의하여 투옥되었다. 해방과 더불어 석방된 그는 1946년에 목사안수를 받고 애양원 교회에서 시무하면서 나병환자의 치료를 위하여 환자의 발에서 고름을 빨아낸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1948년 여순반란사건 때 두 아들 동인(東印)씨와 동신(東信)씨가 순교를 당하는 참화를 겪었지만 아들들을 총살한 안재선씨를 용서해 달라고 각계에 청원하여 그를 사형 집행장에서 극적으로 구출하고 양자로 삼은 사실은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더 나아가서 그 후 1950년에 일어난 6·25동란 때에는 피신할 기회를 신도들에게 양보하고 교회를 지키다가 자기 자신도 순교를 당했다.

이러한 분을 기리는 순교기념관이니 그 건물의 입구에는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는 성구가 간판을 대신하고 있었다. 1993년에 개관한 이 기념관 내부에는 손 목사님이 쓰시던 성경책, 설교노트, 옥중편지, 십일조 내역서, 오르간, 의자, 생전의 옷가지, 그리고 당시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손목사님의 9가지 감사기도문과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도 걸려있었다. 기념관 밖으로 나오면 유적공원이 펼쳐져 있는데 몇 개의 순교시비와 용서와 사랑을 상징하는 기념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거기에서 조금 내려오면 양지 바른 곳에 손양원, 손동인, 손동신 삼부자의 묘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2). 이락사 (李落祠)

남해안에는 어디에 가든지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유적이 즐비하게 늘려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여수의 진남관(鎭南舘), 남해의 충렬사(忠烈祠), 통영의 제승당(制勝堂)이다. 이러한 곳들은 벌써 다른 기회에 여러 번 갔었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이락사(李落祠)를 들러볼 수 있어 참 좋았다.

남해의 관음포(觀音浦) 앞바다 해안에 위치한 이곳은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이충무공의 영구를 맨 먼저 육지에 안치했던 곳이다. 경내로 들어가는 문에는 이락사란 현판이 박 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휘호로 걸려있고, 경내에는 대성운해(大星殞海, 큰 별이 바다에 잠기다)라는 편액이 붙은 충무공의 묘비각(廟碑閣)이 있다. 그 안에 삼군 수군통제사 이순신비란 유허비(遺噓碑)가 있었다 (사적 제232). 이곳을 지나 굵직한 대나무밭과 무성한 소나무숲길을 걸어 한참 올라가니 첨망대(瞻望臺)가 나타났다. 이곳에서는 노량해전의 격전지인 관포만 일대가 한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 이충무공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전방급 신물언아사”(戰方急 愼勿言我死, 지금 전쟁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라는 유언비가 서있다. 1998년 이충무공 순국 400주년을 기념하여 당시 해군 참모총장이던 유삼남제독이 쓴 글씨이다.

 

3). 금산 보리암(錦山 菩堤庵)

남해의 금산은 한려해상국립공원가운데 상주·금산 지구에 속하는 해발 705m의 명산이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기도하고 왕위에 오르자 고마움의 표시로 비단 금()자를 써서 금산이란 이름을 내려주었다는 곳이다. 그 산기슭의 절벽에 원효대사가 세웠다는 보리암이란 암자가 있는데, 이곳은 양양의 낙산사(洛山寺)와 강화의 보문사(普門寺)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3대 관음기도처로도 유명하다. 바다가 보이는 사찰 앞쪽에는 큼직한 해수금강보살상과 보리암전삼층석탑이 위치하고 있어 때마침 자녀들의 대학입시를 앞두고 기도하는 불자들이 끊임없이 모여들고 있었다.

금산의 정상에까지는 올라가지 못 했지만 이곳은 꼭 한번 와보아야 할 곳이라고 생각했다. 버스로 한참 올라왔다고 생각했는데 중간에 내려서 작은 마을버스로 한참을 더 올라가 복곡 제2주차장까지 왔다. 거기서는 도보로 한 1km정도의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가니 암자가 나타났다. 주위는 삼면이 깎아진 절벽에 기암괴석이 둘러 서있고, 멀리는 상주은모래비치를 포함한 남해 바닷가 풍경이 내려다 보였다. 금산 38경을 다 구경하지는 못했지만 금강산에 가더라도 이보다 더 아름다운 경치는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4). 통영 옻칠미술관

다음으로 찾아간 문화유적지는 옻칠과 나전으로 표현된 현대예술을 관람할 수 있는 통영 옻칠미술관이었다. 마침 그 미술관의 설립자인 김성수관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 직접 공예품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나전칠기의 아름다움과 오묘함을 감상할 수 있었다. 김성수관장은 1935년생으로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숙명여대와 홍익대에서 미술대교수로 재직했으며, 한국칠예가회를 창립하여 그 초대회장을 역임했다. 그 동안 국내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등에서 수차례의 작품발표회도 가졌다.

우리나라의 칠예문화는 길게는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선사시대에 벌써 채화칠기를 사용한 흔적이 있고, 고려시대에는 국보급의 나전칠기가 등장했으며, 조선시대에 이순신장군이 설치한 12공방에서 나전칠기를 대량 생산함으로서 통영이 칠기의 본 고장과 같이 되었다고 한다. 김관장의 설명에 따르면 칠예(漆藝)에는 표현하고자하는 재료와 표현기법에 따라 칠예의 명칭과 종류가 다양하다고 한다. 나라별로 즐겨 사용하는 칠예는 한국의 나전칠기(螺鈿漆器), 중국의 조칠(彫漆), 일본의 마키에(蒔繪)를 들 수 있다. 마침 우리가 이곳에 방문한 기간에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의 4개국이 참가한 “2016 국제 현대옻칠아트전(International Contemporary Ottchil Art Exhibition)"이 열리고 있던 터라 외국의 작품들도 재미있게 구경할 수 있었다. 옻칠공예, 옻칠회화, 옻칠장신구 등 여러 분야에서 여러 가지 아름다운 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었는데 일본의 옻칠공예품 가운데는 참 아름다운 것이 많았다.

 

5). 박경리 기념관(朴景利記念舘)

5년 전 통영을 방문했을 때에는 한려수도조망케이블카를 타고 미륵산 정상에 올라가서 박경리 공원을 멀리서 내려다보았다. 그때는 공원은 멀리서나마 보았지만 기념관에는 가지 못한 아쉬움을 가졌는데, 이번에는 기념관을 상세히 구경했지만 공원에는 가보지 못했다.

한국현대문학의 어머니 박경리 선생은 1926년 경남 통영군에서 출생하여 경향각지에서 문예활동을 하다가 1980년에는 강원도 원주시에 정착하였고, 2008년에는 통영으로 다시 돌아와 거기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1955년에 현대문학에 김동리 선생에 의해 단편소설 계산이 추천되어 문단활동을 시작한 이래, , 단편, 장편소설 등으로 수많은 상을 받았으며, 1962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김약국의 딸들1969년에 연재를 시작한 토지이후로는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최고의 소설가가 되었다. 대하 장편소설 토지1969년에 시작하여 1994년에 완간할 때까지 무려 26년이 걸린 일생일대의 대작이었다.

박경리 선생은 그의 생전에 그가 주로 문학 활동을 하던 원주시에 토지문학공원을 설립하였으나, 그의 사후에는 그가 태어나고 또 떠나가신 통영시에 박경리공원이 조성되어 그의 묘소가 안치되었으며 그 입구에 박경리 기념관이 설립되었다. 기념관은 연건평 300 여 평 규모의 2층 건물인데 그 주변에는 선생께서 생전에 취미로 즐기던 채마밭과 장독대, 그리고 아담한 정원이 조성되어 있고, 건물 1층에는 관리사무실과 세미나실이 있으며, 유품은 2층에 전시되어 있었다. 선생의 대표작 토지의 초판전질과 친필원고, 그 밖의 시와 소설의 완간원본, 그리고 여권, 편지 등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평소 선생이 집필하던 원주의 서재를 재현해놓고, 사용하던 소목장과 재봉틀도 전시되어 있었다. 소설 김약국의 딸들의 주요 무대인 안뒤산을 중심으로 한 마을 뚝지, 간창골, 충렬사, 강구안 등 당시(1890년대)의 통영의 옛 모습을 재현한 모형도 설치되어 있었으며, 원주의 박경리문학공원에 설치된 선생의 좌상 축소모형과 커리컬쳐도 전시되어 있었다.

기념관의 관람을 끝내고는 선생님의 묘소가 있는 기념공원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날씨도 덥고 시간도 촉박하여 그곳은 생략한다고 했다. 그 때는 모두들 지쳐 있어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많은 아쉬움을 남긴 결정이었다.

 

6). 청마기념관(靑馬記念舘)

근대한국문학의 거두이자 교육자인 청마 유치환(柳致環)선생님은 1908년 경남 거제시 둔덕면(屯德面)에서 태어나서 거제, 통영, 경주, 부산 등지에서 활동하다가 1967년 부산남여상고 교장으로 재임 시 불의의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1931문예월간에 정적(靜寂)을 발표하여 등단한 후 청마시초(1939), 생명의 서(1947), 울릉도(1948), 청마시집(1954) 13권의 시집과 주옥같은 작품을 남겨, 수많은 상도 받았고 1954년에는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피선되었다. 그의 시풍은 서정주, 김동리 등과 함께 생명파시인의 한사람으로서 동인지 생리를 간행하기도 했다. 교육가로서는 1937년 통영협성상고의 교사로 부임한 이래 부산고, 경주고, 경남여고, 부산남여상고 등에서 교장 직을 역임했다.

기념관 내부에는 청마의 시집들의 원본, 원고, 편지, 사진 등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기빨’, ‘기다림’, ‘그리움들과 같은 대표적인 시들은 전시실 벽에 걸어놓아 지나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해두었다. 기념관 외부에도 청마의 시비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고, 청마선생님의 동상 주위로도 시들이 가득 차있어 우리들은 그곳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기념관 바로 건너편에는 2005년 거제시가 복원한 청마생가가 있었다. 두 채의 초가(草家)가 서있고, 돌담과 싸리대문으로 울타리 진 뜰 안에는 텃밭,  장독대,  우물 등이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되어 있었다.  한쪽 초가의 정면에는 사모곡(思母曲)’이 걸려 있어 시인의 효성을 읽을 수 있었고, 생가 입구에 서 있는 거제도 둔덕골이란 청마의 고향시비에서는 시인의 고향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생가를 구경하고 나오는 길가에는 흰 바탕에 푸른색과 붉은색의 깃발이 나부꼈는데, 푸른색 깃발에는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시작하는 기빨, 그리고 붉은색 깃발에는 사랑하는 것은 사랑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로 시작하여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로 끝나는 행복이 걸려 있었다.

청마생가와 기념관을 관람하고 나오는데 안내자는 통영에도 청마생가가 있고 청마문학관이 있다고 했다.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는 필자에게 생가가 두 군데 있을 수는 없는 일이지만 통영시가 통영의 망일봉 기슭에 청마문학관을 지으면서 그곳에 생가를 복원했다는 것이다. 청마가 출생한 거제시 둔덕동은 그 당시의 행정구역 상 통영시에 속해있었고, 청마형제가 유년기는 통영에서 보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거제시와 청마의 세 딸들이 거세게 항의하고 소송 전 까지 벌려 승소함으로써 통영에는 생가가 없어지고 청마문학관 만 남아있다. 청마선생을 기념하기 위하여 기념관이나, 문학관이나, 박물관이나, 무엇이든지 얼마든지 많아도 좋지만 생가가 두 군데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잘 못된 것이었다. 법의 힘으로 통영의 것은 청마가 유년시절을 보낸 곳으로 되었다고 한다. 늦게나마 바로잡았으니 다행한 일이다.

 

4. 정원 및 공원의 관람

1). 순천시의 순천만국가정원(順川灣國家庭園)

이번 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는 순천시에 있는 대한민국 대표정원인 순천만국가정원이었다. 5년 전에 이곳을 찾았을 때는 대규모 정원 조성공사가 한창이었고 2년 뒤에 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린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정원은 보지도 못하고 갈대밭 옆길을 지나쳐갔다. 그러던 것이 2013년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를 거치면서 명실상부한 국가대표정원이 되었다. 당시에 11개국이 참가하여 각자가 자기네들의 전통공원을 조성하여 6개월간에 걸쳐 정원박람회를 열었던 곳이다. 지금은 그때 조성된 정원에 11개의 테마정원을 더하여 더 아름답고 재미있는 정원으로 발전시켰다. 이웃 도시 여수시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대규모 국제산업박람회(EXPO)를 개최하였는데 박람회는 화려하게 성공적으로 치렀지만 시설투자가 너무 많이 되어 그때 지었던 건물들이 지금은 애물단지로 전락되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비하면 순천시는 박람회 자체는 조촐하게 치렀지만 그 시설을 잘 가꾸어 지금은 훨씬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여 시 재정에 막대한 보탬이 되고 있다고 하니 지방자치단체도 그 단체장의 혜안과 판단이 그 지방의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각설하고 정원구경 이야기로 돌아간다. 정원에는 서문과 동문의 출입구가 있는데 우리는 서문으로 들어가서 한국정원을 구경하고 순천만 국제습지센터를 거쳐 다시 서문으로 돌아오는 길을 택했다. 한국정원은 북서쪽에 치우쳐 있지만 단지 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그 정상에 올라가면 정원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좋은 점이 있었다. 동백나무, 편백나무, 소나무 등 갖가지 나무들이 자리 잡은 오르막길로 정자에 닿으니 순천만WWT습지를 거쳐 하늘정원이 내려다보이고, 동천의 꿈의 다리를 지나서 펼쳐진 10개국의 정원과 호수정원이 멀리 펼쳐져 있었다. 그 다음은 내리막길로 수목원전망지와 철쭉공원을 거쳐 국제습지센터에 이르렀다.

오른쪽으로는 무인궤도열차인 스카이큐브(Sky Cube)의 정원역이 보였다. 여기에서 스카이큐브를 타면 4.6km (12분소요) 지점에 있는 문학관역에 도달하는데, 거기서 약 1km 정도 갈대밭을 끼고서 걸어가면 순천만습지에 도착하게 된단다. 이 순천만습지는 세계 5대 연안습지로서 2006년에는 람사르습지로 등록되고, 2008년에는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41호로 지정되었으며, 2013년부터는 대한민국 생태관광지역으로 선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관광안내자에 따르면 이 정원을 한 바퀴 돌면서 먹거리를 즐기고 볼거리를 챙기려면 적어도 5시간이 걸리며, 순천만연안습지와 갈대밭을 돌자면 하루 종일이 걸린다고 했다. 일반 관광객들도 서문으로 입장하여 한국정원은 생략하고 꿈의 다리를 지나 10개국의 정원과 순천호수공원을 보고 동문으로 빠져나올 수가 있는데 약 3시간이 소요된다고 했다. 우리는 벌써 피곤하고 시장하니 다음에 한 번 더 하루의 일정을 잡아 다시 오기로 다짐하고 서문을 나섰다.

2). 여수시의 돌산(突山)공원과 자산(紫山)공원

여수해상케이블카를 타기위하여 돌산공원에 도착한 때는 오후 5시가 거의 다 되어서였다. 아침 일찍 서울을 출발했지만 순천만국가정원과 애양원을 들러 관광하고 왔으므로 상당한 사간이 걸렸다. 벌써 12,000여보를 걸었으니 손양원 순교기념관을 떠날 때만해도 케이블카는 내일로 미루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도 있었다. 그러나 막상 돌산대교를 지날 때 생각해보니 여수만을 관람하기에는 오히려 저녁 늦은 시간이 제격이란 것을 깨달았다.

여수해상케이블카는 돌산공원의 놀아 정류장에서 자산공원의 해야 정류장까지 1.5km 구간을 왕복하는데, 비바람이 세차게 불지 않으면 일 년 내내 운영한다고 했다. 돌산공원 쪽은 별로 볼게 없었으나 자산공원으로 올라가니 팔각정이 나타나고 거기에서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오동도지구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5년 전에는 행복열차를 타고 오동도에 가서 동백나무숲을 따라 섬을 한 바퀴 돌고 내려왔지만 이번에는 하늘위에서 아래를 편안히 내려다보는 것도 좋았다.

자산공원에서 가파른 계단을 따라 50m 정도위로 올라가니 척산동산이 있고 그 곳 광장에는 이순신장군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동산 한 쪽으로 여수항 해상교통관제센터가 있었는데 그 안에 빠삐용(Papillon)관이 있었다. 이곳은 마치 미술관의 전시실같이 생겼는데 갖가지 나비를 위시한 여러 가지 곤충의 표본을 진열하면서 나비의 생태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해놓은 곳이었다. 필자는 용무가 있어 뒤쳐져 따라오느라 많은 것을 보지 못했지만 주 흥재 박사의 나비채집친구 조달준 곤충생태가께서 직접 동행하여 상세히 설명해준 덕으로 참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고 했다. 자산공원 해야 정류장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올 때는 벌써 땅거미가 지고 있어 왼쪽으로는 거북선대교, 오른쪽으로는 돌산대교의 불 켜진 모습이 보였다. 앞으로는 확 터인 여수항의 밤바다 경치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 하루의 피곤함도 잊어버리고 늦은 저녁의 시장기도 가시게 하는 절경이었다.

 

3). 남해시의 원예 예술촌(園藝藝術村)

관광 제2일째. 이순신대교와 남해대교를 거쳐 남해시에 건너왔다. 아침에는 이락사를 관람하고 멸치쌈밥으로 점심을 때운 우리는 독일마을이 있는 언덕 뒤편에 지어진 원예 예술촌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원예전문가 21명이 뜻을 모아 집과 정원’(House N Garden)을 개인별 작품으로 조성한 마을이다. 전체 5만여 평의 대지에 지어진 크고 작은 집, 여러 나라의 특성 있는 정원, 각가지 테마를 가춘 정원들이 예쁘게 가꾸어져 있었다. French Garden, Vienna Garden,

Finlandia, 화정(和庭), 화수목(化水木) 등은 그 나라의 대표적인 전원예술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고, Topiary Garden, Rainbow Garden, Ladies Garden, 풍차 이야기, 기린 벤치, 풀꽃지붕 정원 등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은 정원들이었다. 단지에서 가장 높은 곳에 만들어진 전망대에서는 바로 앞에 독일마을의 이색적인 경치가 내려다보이고, 멀리 남해의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잘 가꾸어진 산책로를 따라서 한 바퀴를 돌아오니 벌써 5,000보를 훌쩍 넘었다.

 

4). 거제시의 산방산 비원(山芳山秘園)

청마기념관과 그 생가를 관람하고 그 깃발에 새겨진 행복을 되새기며 바로 그 뒤뜰과도 같은 산방산 비원으로 올라갔다.

이곳은 객지에서 자수성가한 향인 김덕훈 회장이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재 100여억 원을 투입하여 5만 여 평의 대지에 경남 최대 규모의 비원을 조성한 것이다. 이 비원에는 각종 야생화와 희귀식물들이 어우러져 있으며, 산방산 위쪽에서 폭포가 떨어져 계곡을 따라 흐르는 개천에는 메기와 붕어와 같은 민물고기가 자연 상태로 서식하고 있다. 밤에는 부엉이 울음소리, 풀벌레와 개구리의 합창, 반딧불의 반짝임, 수많은 별들과 바위에 걸친 달과 구름, 이런 것들이 어울려 마치 선경에 온 것 같다고 하여 비원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입구를 들어서자 물레방아 분수대가 나타나고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노라면 철이 좀 지났지만 비비추, 수국, 매발돕, 쑥부쟁이, 별개미취, 구절초 등과 같은 야생화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얼마 전에 내린 폭우로 위쪽 산책로가 통제되어 폭포에까지 가지 못하고 수련연못, 수국길을 걸어, 연꽃연못을 둘러 내려왔다. 포장이 안 된 좁은 길과 징검다리를 건너 계곡을 내려올 때는 넘어질 가봐 걱정을 했지만 우리 모두는 거뜬하게 일정을 마쳤다. 오늘도 15,000보를 넘께 걸었다.

 

5). 통영시의 장사도 해상공원(長蛇島海上公園)

이번 여행의 마지막 관광지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의 거제·해금강지구에 편입되어 있는 장사도 해상공원이었다. 거제 삼성호텔에서 마지막 밤을 푹 쉰 우리 일행은 거제도의 저구항으로 가서 남부유람선의 선경호를 타고 장사도로 향했다. 잔잔한 바다 위를 갈매기 떼의 마중을 받으면서 남쪽으로 한 15분쯤 내려가니 길쭉한 섬이 나타났다. 바로 장사도 이었다.

이 섬은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약 1.7km의 길이로 뻗어있으며 섬의 평균 넓이는 200m에 불과하여 마치 긴 뱀과 같이 생겨 장사도 라 부른다고 했다. 섬의 가장 높은 곳이 해발 65m이니 우리가 이 섬을 한 바퀴 도는데 2시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거리로는 거제도가 훨씬 가깝지만 행정구역상으로는 통영시 한산면에 속해있다. 1960년대에만 해도 20여 가구에 80여명의 사람이 살았으나, 사회가 산업화되면서 모두가 육지로 빠져나오고 1990년대에는 무인도가 되었다. 1995년에 어느 민간인 자본가가 이 섬을 매입하여 2004년에는 관광 섬으로 개발했다. 사람이 살 당시인 1968년에 한산초등학교의 장사도 분교가 개교하였고, 1991년까지 졸업생 45명을 배출하고 폐교하였는데 당시의 교사와 교정이 그대로 보존 되어있다. 그 때 사람이 살던 집을 개조한 섬 아기 집작은 교회가 그대로 남아있다. 최근에는 별에서 온 그대함부로 애틋하게등 드라마의 촬영지로서의 유명세를 타 관광객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섬에 내리니 동백꽃이 그려진 ‘Camellia’란 간판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동백나무를 상징하는 이 로고(logo)는 장사도 어느 곳에 가나 만날 수 있는데 이곳이 동백나무의 자생지로서 가히 동백의 섬이라고 할 만하다는 것이다. 동백 터널 길(Camellia Tunnel)을 지나갈 때에는 조금 더 추워져 빨간 동백꽃이 활짝 피어있을 때 이 길을 걸어봤으면 하는 아쉬움도 가졌다. 동백나무 뿐 아니라 후박나무와 구실 잣 밤나무 등도 이 섬에 자생하는데 곳곳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원래 이 섬에 자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외지에서 이식해온 수국은 번식력이 좋아 섬 전체를 덥고 있어 여름철에 이곳을 다녀간 분들은 온통 수국의 아름다움에 매료되곤 한단다.

섬 전체가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상이란 주제로 이루어진 공원이다. 생태시험장, 생태온실, 수생식물원, 양치식물원, 분재식물원 등 희귀식물들의 보고가 있는가하면 야외전시장, 야외무대가 있고, 12머리상의 조각품, 청마유치환선생의 행복시비 등이 전시되어있어 말 그대로 문화해상공원이다. 달팽이전망대, 승리전망대, 다도전망대, 부엉이전망대, 미인도전망대 등도 적절한 곳에 설치되어있어 부근 다도해 곳곳의 절경도 감상할 수 있었다.

오늘도 10,000보가 넘는 비탈길을 걸었더니 피로와 더위에 지쳐 어디 좀 앉아서 시원한 아이스크림이라도 먹고 싶었다. 카페테리아(Cafeteria)라고 이름 붙은 음식점에 들어가 시원한 것을 찾으니 팥빙수 밖에 없단다. 전망 좋은 자리를 골라 앉아 대덕도(大德島), 소덕도(小德島), 가왕도(加王島) 등을 내려다보면서 큼직한 팥빙수 한 그릇을 두 사람이 나눠 먹는 맛, 또한 오랫동안 잊혀 지지 않으리.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해안의 정원구경을 간다면 외도(外島)로 갔었지만 지금은 모두가 장사도로 몰려가는 이유를 알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