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忠州) 나들이 “중원(中原)에서 만난 보물들”                2010년 4월

“중원(中原)에서 만난 보물들”


(1) 중원 고구려비(中原 高句麗碑) <국보 제205호>

(1) 삼국시대 고구려, 신라, 백제가 서로 차지하려고 각축하던 요충지로서의 중원(中原) 땅 충주(忠州)의 ‘선돌마을’에서 1979년에발견된 이 비석은, 영역확장의 업적이 컸던 고구려 제20대 장수왕(長壽王, 394-491)의 공을 기리는 내용이 기록된 ‘고구려-신라 국경 경계비’로 추정되는 남한 유일의 고구려 비석이랍니다.

(2) 자연석을 갈고 닦아 4면에 700 여자의 글씨를 새겼다지만, 비각의 창살 틈으로 보이는 것은 이 비석의 전체 모습이 꼭 ‘중국 길림성 집안현’(옛 고구려의 두 번째 도읍지)에 있는 ‘광개토대왕비(호태왕비)’와 닮았다는 것밖에 알 수가 없었습니다.

3) 다행히도 안내판 옆에 같은 크기의 복제품 비석을 세워 놓아서 궁금한 것들을 좀 덜 수 있었습니다.



(2) 중원탑평리7층석탑[중앙탑](中原塔坪里7層石塔,中央塔) <국보 제6호>

(1) 충주 시내의 한복판, 남한강변(탄금호반)의 넓은 들 한 가운데, 흙으로 돋운 높은 기단 위에, 통일신라 때(9C 초 전후) 세운 7층 석탑이 있습니다. 그 시대의 것으로는 유일한 7층 석탑이라는데 20C 초에 해체 복원하는 과정에서 많은 유물이 수습되었다고 합니다. 국토의 중앙에 있다고 해서 ‘중앙탑’이라고도 한답니다.

(2) 이 탑만을 위해 흙으로 높은 기단을 돋운 점이라든지 14.5 m나 되는 탑의 높이에 비해서는 탑신이 매우 날씬한 게 눈에 뜨입니다. 그 밖에 탑신이나 옥개석 등에는 별다른 조각이나 장식이 없이 아주 소박했습니다. 현존하는 신라 석탑 중에서는 가장 높은 것이랍니다.

(3) 중원 창동5층석탑(中原 倉洞五層石塔) <충북유형문화재 제8호>

(4) 중원 창동리약사여래입상(中原 倉洞里藥師如來立像) <충북유형문화재 제271호>

(5) 중원 창동마애불(中原 倉洞磨崖佛) <충북유형문화재 제76호>



(6) 미륵리석불입상(彌勒里石佛立像) <보물 제96호>

(1) 충주의 남쪽 수안보(온천)에서 다시 남동쪽으로 약 10 여km 어름에, 옛 신라-고구려의 국경이 되었던 ‘하늘재’가 있습니다. 이 하늘재의 북쪽 미륵리 쉼터(당시의 ‘대원 大院’ 객사 터가 있음) 옆에 고려 초기의 것으로 알려 진 “석굴사원(대원사 大院寺로 추정)”터가 있습니다. 목조 지붕을 소실한 채 석굴 둘레만 두르고 거기 석불입상이 한분 계십니다. 불상의 얼굴에는 세월의 이끼가 전혀 끼지 않아 거기만 특히 맑게 밝아 보이는데 왜 그런지 아무도 그 이유를 설명해 주지 못합니다. ‘돌 갓’ 만으로는 다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2) 이 불상은 석등과 5층석탑(다음의 그림)이 일직선으로 해서 북쪽을 향해 서 있는데, 고려 말의 비운의 왕자 ‘마의태자와 덕주공주’의 전설을 안고 있습니다.



(7) 미륵리5층석탑(彌勒里五層石塔) <보물 제95호>



(8) 낙수 몇 점:

(1) 현지 문회재해설사의 해설을 즐기는 회원들<미륵리 대원사석굴 터에서>

(2) 답사는 항상 즐거워...<탄금대공원 산책 길>

(3) 점심 식사에 곁 드린 ‘충주 특산 청명주(淸明酒)’ 한 잔은 더욱 즐거워...<수안보, 버섯전골식당> 끝.





南齋 沈 英 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