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회 나들이(1)-화성행궁‏

  김진호 (jinhokm@dreamwiz.com)

 

2009-11-8
가을비 우산 속에
화성행궁 탐방

입구는 신풍루(新豊樓)
   화성 행궁의 정문으로 1790(정조 14)에 누문 6칸을 세우고 진남루(鎭南樓)라고 하였다가
   나중에 개명.
   '신풍'이란 ...정조에 게 있어 화성은 고향과 같은 고장이라는 의미로 편액을 걸게 한 것.
   1795년 을묘 행차시에 신풍루 앞에서는 정조가 친히 참석하여 화성부의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고 굶주린 백성에게는 죽을 끊여 먹이는 진휼 행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매표소 앞에 있는 나무는 '좌의정나무'와 '우의정나무'
오른편에 있는 것이 '영의정나무' 가지 일부

여의정나무가 더 아름답다고 하나
지금은 잎이 ......
가운데 홍살문---
홍살문 (紅--門)은 홍전문(紅箭門)이라고도 하는데,
당시 백성들이 화살 '전(箭)'자를 '살'로 발음하여 지금은 홍살문이 되었다고
능(陵)·원(園)·묘(廟)·궁전·관아 등의 정면 입로(入路)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문.
둥근 기둥 2개를 세우고 지붕이 없이 붉은 살을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 박았다

행궁 (行宮)=임금이 나들이 때에 머물던 별궁. ≒이궁(離宮).\

신풍문을 들어서면
팔달산(八達山)과 서장대(西將臺) 보여
수원의 중심부인 팔달산 정상에 있는 지휘본부
  일명 화성장대(華城將臺)는 다음에 올라가기로

두변 째 문이 좌익문(左翊門)
  곁에서 돕는 다는 뜻
  내삼문인 중양문을 바로 앞에서 돕는다는 뜻

좌익문 들어서면 다음이 중양문
  궁궐 건축의 삼문 설치 형식에 따라 행궁의 정전인 봉수당을 바로 앞에서 가로막아
  굳게 지키는 역할을 하는 내삼문(內三門)
  1790년(정조 14)에 완성되었으며, 중앙의 정문과 좌우의 우협문, 좌협문으로 이루어져 있고
  문 좌우로 긴 행각을 두어 출입을 통제 하였다.

행궁의 정전(正殿)인 봉수당(奉壽堂)에 이르는
돌길은 중앙이 임금이 걷러가는 어도(御道)
좌우 낮은 길은 한쪽에 문관, 한쪽에 무관들이 따라가는....

1997년 복원된 봉수당(奉壽堂)
   원래 이름은 장남헌(壯南軒)이었으나
   1795년 윤 2월의 혜경궁 홍씨 회갑연을 이곳에서 치른 다음,
   당호를 봉수당으로 바꾸고 참판을 지낸 조윤형에게 글씨를 쓰게 했다.
   만수무강을 받드는 집이라고 생각했던 것

경룡관(景龍館)
  장락당으로 들어서는 누문으로 경룡이란 제왕을 상징하는 큰 용을 뜻한다.
  2층은 누마루로 만들고 1층을 문을 만들어 지락문(至樂門)이라 이름붙였다.

장락당 인터넷 사진
  장락당(長樂堂)은 1795년에 정조가 행차했을 때에, 혜경궁 홍씨의 침전으로 사용되었던 건물로
  1794년에 봉수당의 남쪽에 동향으로 세워졌다.

정조가 혜경궁 홍씨의 만수무강을 위해 쓴 힘찬 친필 편액

일월오악도(日月五岳圖)
어좌(御座)나 어진 (御眞) 뒤에 놓이는데
일월도(日月圖),·일월오봉산도(日月五峰山圖)라고도 불려
조선 후기에는 항간에서도 일종의 장식화로 민화의 범주에서 그려지기도...
화면의 대부분을 점하는 다섯 개의 큰 봉우리와
그 아래 소나무·폭포·파도, 상단 좌우에 해와 달을 포치시켜 좌우균형을 갖춘 매우 도식적인 그림

*우리나라 오악: 백두산 / 금강산 / 지리산 / 묘향산 / 북한산(삼각산)
* 중국의 오악명산; 태산(太山) /화산(華山) / 숭산(嵩山) /형산(衡山) / 항상 (恒山)

정조의 영혼이 깃든 화령전(華寧殿)
정조 돌아가신 후 어진을 보관한 곳

운한각(雲漢閣)
운한각은 화령전의 정전(正殿)으로 정조의 초상을 봉안한 건물
운한은 은하수를 말하는데,
『시경』대아 탕지십(蕩之什)「운한」첫 구절에“환한 저 은하
수가 하늘에 밝게 둘러 있네[倬彼雲漢 昭回于天].”라고 한 데에서 따왔다고

이 일월오악도 앞에 장수의 옷을 입은 정조의 어진(김홍도 그림이지만 물론 가짜)이....
임금이 장수복을 입는 것은 드믄 일

유여택(維與宅)
    평소에 화성유수가 기거하다가 정조가 행차시에 머물며 신하들을 접견하는 건물
    1790년(정조 14년)에 건립되어 은약헌(隱若軒)이라 하였다가
    1796년에 증축하면서 현재의 명칭을.

낙남헌(洛南軒)
   1794년에 완공된 건물로 1795년의 행차시에 각종 행사가 이곳에서 치러졌다.
   일제강점기에 화성행궁이 철거될 당시 훼손당하지 않고 남아있는 건축물중 하나

노래당(老萊堂)
노래(老來)란 말은 '늙은 것은 운명에 맡기고 편안히 거처하면 그곳이 고향이다'라는
백거이(당나라 시인)의 시에서 따온 것
 정조가 장차 화성에 내려와 혜경궁을 극진히 모시겠다는 뜻을 잘 표현하였던 것
남낙헌과 함께 붙어있다.

득중정(得中亭)
   정조가 활을 쏘던 정자로 1790년에 정조가 세로 만들어진 이 정자에서
   활을 4발 쏴 다 맞춘 기념으로 득중정으로 지었다고

건물 벽에는
'정조대황늘행반차도 화성행차하는 정조대황의 행차모습

행궁의 건물의 특징중 하나가 벽돌을 잘 사용한 것이라고
벽돌은 아래로 갈수록 커지는데
그 색깔이 여러가지로 정감이 있어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