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받은 김광일 동기의 부고

     

김광일 동기의 서거에 대한 소식을 뒤늦게 받았습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수소문을 하여 알아낸 소식이니 짦으나마 여기 말씀 올립니다.

광일현은 졸업후 한양대학 정신과 과장으로서 많은 공을 새웠습니다. 정년 퇴직을 하고 쓰 보낸 수필에 이사가면서 오랫 동안 동무가 되었든 책들이 무거운 짐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웹마스터가 웹을 시작 하면서 email이 몇번 오갔으나 그후 소식이 두절 되었습니다. 오래동안 지병인 만성 페쇠성 페질환 때문에 요양참 강원도로 옮긴 것 같습니다.  서거한 날은 정확히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 한양대학병원 영안실에서 고인이 길른 한양대 정신과의국인들의 애도속에 영결식이 있은 것 같습니다. 그는 한양대정신의학과를 탄생시킨 역사에 남을 공을 새웠다고 봅니다.

설하에 큼아들은 한양대 정신과교수, 둘째는 정신과 개업의, 딸은 덕성여대 의상학과 교수로 모두 성공한 것 같습니다.

공인의 명복을 빌며 또 가족에게 위로의 뜻을 올리며 이만 줄입니다. 이글을 읽으시고 고인에 대한 부가할 이야기가 있으시면 웹미스터에게 보내주시면 여기 계속 실리겠습니다.

                      光日형 영전에.

光日형, 오랫동안 병고를 버티다가

드듸어 모든일을 훌훌 털어버리고

그 진진했던 역사를 지긋이 뒤로하고

이젠 정녕 떠나셨구려. 멀리로도 떠나셨구려.

 

강원도 원주였었겠지? 2011

동해안을 돌던 우리들을 마중나오겠다 별렀었다던데 ---.

멀리서 殷淳이 보내주던 classic music 을 들으면서

조용히 나날을 즐긴다고 알려주었던것이 어제같기만한데.

 

키가 훤출히 크면서도 친근한 몸매

안경테 그뒤에 깊게 자리잡은 형형한 눈빛

벌써 다 알고 있었노라, 그 자상한 웃음.

어덴지 늘 저 먼--곳을 바라보고 있는듯한 그런 표정.

 

光日형은 처음부터 학자요, 교수요 저술가로 앞을 걸었다.

남들은 아직도 제자리 걸음으로 進路를 찾으려헤멜때

光日형은 한국의 民俗學연구에 嚆矢를 던졌다.

한국의 민속연구를 통해 보다 완전한 韓國의 精神科醫師가 되려는 포부에서.

 

光日형은 수많은 저술을 엮어내왔다.

한국의 神話, 巫俗, 宗敎體驗등을 연구, 세계의 석학들과 교류하였다.

저서 韓國傳統文化의 精神分析(1984)은 사계의 壓卷이며

그외에도 400여편의 진귀한 학술논문을 세상에 내놓았다.

 

나는 옟날어느해  光日형을 University at Buffalo 정신과 Grand Rounds 에 연사로 모시었다. 한국무속의 여러가지 희귀 해괴한 양상을 slide를 통해 보여주었는데

깜짝 깜짝 놀라면서 청중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혼이빠진듯 경청하였다.

새로운것을 배우면서 연사의 무궁한 학식에 감탄하였다.

 

내가 한동안 光州 36 陸軍師團에 있을적 光日형이 잠깐 그곳 77 후송병원에 왔었지.

술을 즐겨하는 형과 光州 충장로 막걸리집을 헤메던 기억

속임수에 넘어가는줄 알면서도 몸에 좋다고 무슨 야생동물고기를 찾았던형.

지금 계신데는 어떤가, 옟날이 그리우네.

 

고이 고이 잠드시라. 光日형.

 

哀悼.

朴勝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