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축제를 마친후.....1

깊고 기리 기억에 남을 금축제를 아쉽게 끝내고 웹사이트를 정리 하였습니다. 새로 조은순의 이름다우면서 정서어린 시와 음악을 위한 페이지를 신설 하였고 역시 열성적으로 보내는 김진호 동기의 볼거리는 여전히 재미가 있고 앉아서 우리나라 구경을 할 수 있는 곳입니다. 특히 율곡선생의 페이지에 진호형의 친필이 있으니 꼭 방문 하십시오. 그리고 금축제의 페이지는 언제 끝이 날지 모르겠습니다. 사진을 모으고 또 모아 보니 정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군요. 카메라 값이 떨어지고 필림이 필요 없어지니 사진을 많이 찍게 되고, 그러니 좋은 것을 고르기가 힘이 듭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성원은 늘 이 웹을 다듬는데 피로를 들어 줍니다. 최근에 서울의대총동창회에서 모둔 각 동기의 웹을 합치자고 하니 연구를 하면서 우리의 독창적인 것을 고수 하면서 참여하도록 하는 것을 연구 하여 보겠습니다.   webmaster

심 영보 회장 그리고 금축제 준비위원 여러분,

축제의 여운이 아직도 하게 느껴집니다. 행사관계로 힘들었던피로도 이젠 다 회복이 되었겠지요.

여기 재미 동창회원들은, 歸美한 직후에 곧 다음과 같은 생각에 도달했습니다: 여러분의 수고에 조금이나마감사하는 뜻으로 또, 혹여 여기저기에서 초과비용이 들었을 터인데하며 일금 2500불을 재미 동창회 명의로 전달하자고 말입니다. 재미 동창들에게 e-mail로 수소문해 본 결과, 단 한사람도 이 생각에 異意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우리 모두가 여러분의 수고에 감사하고 있기때문입니다”. 어떤 동문은, “필요하다면 좀 더 걷어서 보내자!”라고도 했습니다.

곧 심 회장 앞으로, 수표나 전신송금 방법을 통해서 보내겠습니다.

재미 15회 동기회,

이 한수

<행사 후 제 1 신>

歡喜와 參與의 “자랑스러운 金祝祭”를 마치고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친애하는 제15회동창회 회원 여러분 !


우리가 오랫동안 준비해 오던 졸업50주년기념 ‘金祝祭’를 성대하고도

원만하게 마치고 이제 다소 여유로운 마음으로 여러분께 인사드리게 되니

매우 기쁘고 또한 우리 모두의 역량을 다시 뽐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가슴

뿌듯합니다.


무릇 50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역정 동안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경영해 온 뜻있고 보람 찬 세월들을 되짚어보니, 우리의 “금축제”가 실로

무한히 자랑스러웠습니다.


학창시절의 남다른 행적은 이미 기념식상의 ‘기념사’ 와 만찬석상에서의

‘동영상’에서 회고한 바 있으며, 우리가 지난 세월에 일곱 번에 걸쳐 발간한

‘문집’에 기록한 우리 개개인의 피땀 어린 역사와 학문적 성취, 인술구휼의

헌신과 인류애 발현, 그리고 넘쳐나는 정서적 감흥의 표출...은 우리의

50년이 결코 범상치 않았음을 입증해 주었습니다.


이처럼 “자랑스러운 金祝祭” 행사에 한국과 미국에서 78 명의 회원(현

회원 총 103 명)이 여러 형태로 참여해 주셨고, 그 중 51 명의 회원은 가족과

함께(합해서 96 명) 기념식과 기념 만찬에도 참석하셨습니다.

이어서 진행된 금축제 기념 ‘내나라 여행(4~7일)’에는 가족 포함 71 명이

참가하여 그간 미처 챙겨보지 못했던 조국의 괄목할 만한 발전과 변화에

놀라워하고 또 흐뭇해했으며, 오랫동안 쌓아 두었던 서로의 기쁨과 영광,

그리고 보람과 애환을 나누는 애틋한 시간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모든 현상은 우리 제15회동창회 회원의 협동심과 응집력의 소산이요

역량의 반영이며 또 그것이 바로 우리의 트레이드마크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역사를 이룩하신 회원 여러분은 장하고 위대 하십니다.

참으로 위대 하십니다. 그리하여 참으로 참으로 감사합니다. 끝.


2011. 10. 28.

서울대학교의과대학 제15회동창회 회장 심 영 보

한수 동문:

나는 11-4 집에 와서 e-mail 보고도 답을 못 했네
정말 좋은 동창회였고 자네와 영보, 그외 협조한 동문에게 참 고맙네 여행예정---하나도 착오없이 말일세
이번여행에 면도기 도움도 고맙고
서울 송금은 두말할것도 없이 찬성이고
또 연락 하세 항상 건강 하기를 그리고 부인께도 안부 부탁 하네
윤경

 

                                           金祝祭 醫大 卒業 50 周年 記念 行事 -- 다녀와서

                                                                                                                                                                                  이 한수(’61)

축제 행사 내내 계속된 청명한 가을 날씨를 만끽하며 지난 10 중순, 15(1961년도 졸업) 동기들과 가족들이 졸업 50 주년을 기념하며 한국에서 모였다.

첫날의 기념식은 모교 대강당에서 재미-재한 동기들 그리고 가족들을 합한 96명과 정기 학장, 민호 부학장, 용현 모교 동창회회장 제위를 비롯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히 그리고 뜻있게 거행되었다.

正裝하고 기념식에 당도한 사람에게, 강당 입구 로비에서는 이름 뱃지와 카네이션을 후배 자원 봉사자들이 일일이 옷섭에 달아주었다. 그순간, “ 얼마만인가, 20 초반의 우리들이 바로 여기서 서성거리며 의학도의 기초를 닦았던 때가? 모두들 인생 여정을 지내고, 상징적인 종착역 중의 하나에 이제 도착하는구나!” 하는 향수와 잔잔한 설레임이 일었다. 식장에 입장하는 복도에서, 반가운 웃음과 악수와 인사는, “, 졸업하고 처음 보는 아니야?”, , 오랜 만이다. 많이 변했구나.”, 혹은 전혀 안변했어!” 하는 탄성으로 이어져, 기념식 내내, 장내의 분위기는 상기되어 있었다. 나이티가 나는 동기들은, 우리들이 지내온 세월이 아주 길었구나 하고 느끼게 했지만, 한편 반가운 모습과 童顔을 잘지켜온 친구들도 더러 있었다.

학교측의 환영사, 축사에 이어, 동문 대표로 승균 재미 정신과 교수의 金祝祭를 맞는 感激제하의 기념사가 있었다. 완숙한 자세와 뛰어난 언변으로, 그는 기념사를 통해, 6.25 4.19 전후의 격동기를 경험한 15 동창들의 특출한 행적과, 노력과 결속력을 구구절절히 재음미했으며, 참석한 동기들에게 15 동창으로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동문으로서의 긍지를 다시 한번 고조시켜 주었다. (그의 기념사 전문은 별지에 揭載될 것이다)

이어서 15 동기 회원들로 부터 모은 성금 3천만원을 모교와 모교동창회 발전기금으로 전달하였고, 회백 동문도 모교 발전기금을 위해 개인적으로 일금 만불을 학장에게 손수 전달하였다. 기념식 순서에 따라, 영보 동기회장과 편집위원들의 노고로 이루어진, 15 동창생들의 7 번째 문집 <자랑스러운 금축제> 네권을 모교 학장실, 도서관 그리고 모교 동창회에 증정하였다.

기념식이 끝난 직후, 학생회관 1 강의실 입구 앞에서, 우리 동기의 자랑인 畵伯 又賢 眞浩 교수 [시계탑의 겨울] 증정 제막식이 있었다. 그림은 80호의 대형 유화로, 차후 2 학년 강의실 출입문 상단에 현수될 것이다. 제막식에는 진호 자신과 학장을 비롯해 최부학장, 학생 대표들, - 동창회 임원과 관심회원들이 참여하였다. 모교를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두고 두고 감탄의 눈길을 그림 속의 시계탑은 영롱한 후광과 같은 색채를 뿜어내는 같았다. 이는 세월을 버티고 시간을 가늠하는 하나의 시계탑일 아니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모든 동문들의 가슴에 각인된 영원한 긍지의 상징이기 때문일 것이다.

시계탑 그림 기념액자 증정 제막행사와 거의 동시에, 건물 한편에서는 [함춘 미술전] 출품 축하회가 있었다. 미술전에 출품한 창욱 , 진호, 휘열, 종근, 두현, 그리고 흥재 동문들은 관람자들을 위해 자기 작품에 대한 미니 해설 폈다. 동기회를 대표해서 일균과 기용은 미술전에 출품한 동기 예술가들에게 기념품과 축하패를 증정하였다.

이어, 대학병원 서편에, 7개월 신축 개원된 서울대학교 癌病院을 순람하며, 이렇듯 훌륭한 병원을 건립한 선후배들의 노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암병원 건물 6 [하늘 공원] 전망대에서 창경궁을 조망하면서, “나는 서울의대 동문으로서, 모교와 한국의학의 발전에 나는 얼마나, 어떻게 기여했던가 ?” 하며 씁쓸한 자문자답을 해보았다.

스케쥴에 따라 우리들은 대형 버스 2 대로, 기념 만찬장 (서울시청 , 호텔 프레지덴트) 이동, 31 모짜르트 홀에 다시 모였다. 사회자 진호 선생이, 작고한 31명의 동창생들을 위한 묵념을 선언하니 장내의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유명을 달리한 그들과 유가족들을 생각하며, 동시에 자신의 실존과 인생현주소를 다시 묵묵히 점검하면서, 지금 자리에 있는 것에 대한 감사와 미래에 대한 형용하기 여러운 경외감을 느꼈다.

다음으로는 금축제의 계획을 주도하고 시종 빈틈 없이 추진해 , 南齋 영보회장의 환영인사와, 재미 동기 회장(筆者) 홈커밍 인사가 있었다. 인사 말미에, 미국측 동창들의 뜻을 뫃아 만들어 감사패를 , 심회장에게 전달하였다. 감사패 증정과 아울러 나는 남재 영보의 2 雅號를, 諸葛 亮의 이름 亮을 따서, 15회의 제갈 량이라는 뜻인 [十五亮]으로 함이 어떠냐고 제의하기도 했다.

삼봉과 재승 동문들의 축사에 이어, 은경씨 (Mrs. 동해) 피아노 반주로 있었던 문자씨(Mrs. 길수) 우아한 독창 Händel Largo 연준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기념만찬의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고, 우리들의 감정을 잔잔하게 하는 하였다. 동창들의 사진으로 엮어진 금축제 동영상 관람후, 예측하지 못했던 두영 박사의 만세삼창 건배제의 함성에 좌중은 폭소로 화답하며 축배를 기울였다.

화기애애하게 진행된 만찬은, 정자씨(Mrs. 철륭) 피아노 반주에 맞춰 일동의 교가합창과 비공식 同期會歌 인희 [모닥불] 제창으로 끝났다.

기념식 다음 부터, 동기회 축제 준비 위원들과 [하나 여행사] 협동으로 기획된 [내나라 여행], 남해안과 동부권 방문을 6 7일에 하는 -스로, 우리 일행 71명과, 3인의 운전기사, 3인의 전문 여행안내자를 포함해 77명이 우등버스 3 대에 분승해서 시작되었다. 버스의 좌석번호는 매일 아침, 부인들이 제비를 뽑아 무작위로 결정되었기에 모두 보다 많은 친구들과 담소할 기회를 가졌었다. 참가 인원의 3 분의 1 처음3 4 만을 끝내고 귀경했지만 나머지 3분의 2 인원은6 7 -스를 관광했다.

글에서, 나는 Internet에서나 전문여행가들의 여행기, 또는 Lonely Planet Travel Guide, Fodor’s Travel Guides 같은 여행안내 책자들이 자세히 설명해주는 式의 事實 報告를 피하고, 우리가 [내나라 여행]에서 보고 들은 것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것들을 간추려 간단히 기술하고자 한다.

처음 방문지인 경기도 화성 KIA자동차 공장 견학은 매우 흥미로웠다. 관람 방문객들을 위해 마련된 깔금한 강당은 우리 일행을 수용하고도 많은 빈 자리가 남아있었다. 15 분 간 슬라이드쇼로 차 제조, 판매과정 및 통계, 공장운영, KIA 회사의 약력 등을 전문적으로 여자직원 한사람이 우리들에게 視聽하게 한 다음 공장 내부로 우리들을 안내했다. 차 제조 과정의 상당 부분이 Robot에 의해 치뤄지고 있었다. 차는 매 30초 마다 완성되 나온다고 했다. 그리고는 터널로 공장 옆 하이웨이를 가로 건너질러, 500-700대를 수용하는 대형 화물선에, 5-10Cm 간격으로 일사불란하게 그 완성품들을 적재한다고 했다. 먼지 방지 필요성 때문에 차체 페인트 과정은 방문객들이 가까이에서 볼 수 없게 되있었으나 기타의 과정은 1-3미터 거리에서 볼 수있었다. 공장 내부는 밝고 깨끗했다. 공장 기술자들은 우리들을 의식할 사이도 없이 일에 전념하고들 있었다. 지금은 현대그룹이 KIA를 경영하고 있으며 現代車와 KIA車 엔진은 동일하다고 했다. 첨단 기술을 대거 동원한, 참으로 거대하고도 훌륭한 자동차 공장이었다.

全南 광주 광역시의 아파트단지들을 경탄의 눈으로 멀리 건너다보며 흑두부정식 점심 식사를 한 후, 세계문화유산의 하나인 보성 고인돌공원(支石基公園)을 둘러봤다. 순천 灣의 유명한 日沒은 못봤지만 석양에 비친 아름다운 순천 만의 풍광을 조망할 수있었다.

순천 송광사에 들렀다. 그 절에 대한 많은 사연이 소개되었지만, 작년에 열반한 法丁스님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평생 無所有를 설법했던 스님이, “일하는 사람들의 노고를 줄여, 壽衣는 말고 승복 입은 채 茶毘(다비:불교에서의 火葬) 해 달라. 저승에 까지 내 말의 빚을 가지고 가고 싶지 않으니 나 떠난 후 더 이상 내 책은 출간하지 말라는 유언에 따라 그의 다비식이 거행되었던 사찰이기도 하다.

순천 다음에 간 곳은 여수. 여수의 곳곳에는 이 순신장군의 족적이 있었다. 장군이 집무하던 전라좌수영 진남관(鎭南館) 은 여러번 보수되었던 단층 목조 건물로, 진남관이란 이름에는 남쪽의 왜구들을 鎭壓하고 南海域 일대를 평정한다는 뜻이 있다고 한다. 일제 강점 때에는, 목조 건물이라 일본인들이 다른 건물들 처럼 쉽게 파괴할 수도 있었으나, 일본 문화를 조선에 투입시키는 방편으로, 여수 중학교, 야간 상업 중학교로 썼기에 보존이 되었고, 지금은 국보 304호로 지정되 있다 한다. 합천 해인사의 팔만 대장경을 보관하는 건물과 몇 안되는 큰 목조건물 중의 하나이다. 지금은 240평이나 되는 큰 건물이지만 이 순신 장군이 전라 좌수영으로 썼을 때는 훨씬 더 컸으리라는 사학자들의 의견이 있다 한다.

우리들은 통영에서 케이블카를 탑승해 보았는데, 케이블카가 닿는 미륵산 정상에서 보면, 통영항의 바다 경치는 아기자기한 아름다운 섬들과 푸른 해안선 때문에

동양의 나폴리라 불린다고도 하니, 가히 그럴만 하구나 하고 느꼈다. 미륵 정상에서는 한산대첩이 있었던 곳을 조망할 수도 있었다, 지금은 평온하고 아름다운 海路이나, 400 여년 수많은 海戰 亡靈들이 고통과 애환을 안고 水漿된 곳이었음을 상기하면서.

여행 들렸던 호텔이 5성급이어서 그러했겠지만, 모든 호텔들은 우리들의 탄성을 받을만큼, 정교하면서도 웅장하고, 편리했고, 직원들은 매우 친절하고, 음식도 명성에 걸맞게 전혀 손색 없이 훌륭했다. 巨濟市의 HOTEL C PALACE에서 16 아침, 버스로 출발하려는데, 버스 3 옆으로, 호텔 남녀 직원 십여명이, 흑백 유니폼을 입고, 일열로 서서 손을 흔들며 미소로 우리들을 전송하는 것이아닌가. 우리는 황송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마음 씀씀이와 그들 특유의 여유가 보였고, 결국 우리들의 기분은 상쾌해 졌고 우리도 버스 안에서 손을 흔들어 그들에게 답례하며 사진도 찍었다.

거제시에서 하나의 해안절경을, 전망대(신선대)에서 내려다 , 소매물도 (小每勿島) 유람선을 타고 낭만적인 등대섬과 남해의 풍광을 보니, “참으로 아름답다 감탄사가 연거푸 나왔다. 거제의 6.25 포로 수용소 기념관은 많은 회원들이 이미 전에 방문한 곳이라 이번 여행 계획에도 없고 해서 들리지 않고, 부산행 거가대교 (巨加大橋) 올랐다. 거대한 거가대교는, 거제시 장목면에서 시작, 바다 위의 10여里를 가덕도 거점을 거쳐 나머지 10里에 해당하는 해저 침매 터널을 통과하면 부산 강서구 천가동에 당도한다. 6년간의 공사 , 작년(2010) 12 14일에 개통되었고, 대교 건축 세계 기록 5 왕이라 한다. 바다 위에 있는 길고 웅장한 사장교를 건축한 것도 경탄할 업적이지만, 바다 밑으로 많은 차량이 소통할 있는 터널을 건축한 대한민국의 교가건축 중공업 기술에 우리는 경의를 표하지 않을 없었다.

부산 근교, 해운대의 수려한 모습이 보이는 동백섬에 우리 일행이 도착한 것은 그곳의 [누리마루] 가보기 위해서였다. 누리마루는 2005 2 세계 21개국의 정상 회담 (APEC) 열렸던 곳이다. 당시의 회의장 내부와 21 개국 대표들의 좌석, 정상회에 참석한 귀빈들에게 대접했던 음식의 실물 크기 모형, 3 입구의 진주 자개 예술품 등이 일반에게 전시되어 있었다. 사방이 유리로 되있고, 기둥과 창문들은 상하 수직으로 서있지 않고, 윗부분이 밖으로 기우러져 나와 있어, 거대한 水晶 유리 盞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독특한 건축물이었다. 한국인들의 첨단 건축술과 세계 정치계에서의 높은 위상을 실감케 해주는 훌륭한 방문지였다.

日程 4일엔 경남 울산, 세계 일위의 조선소 현대 중공업을 견학하였다. 周永 생애 후반 40년에 이룩한 거대한 중공업 단지는 울산의 거의 전부를 포괄하고 있는 듯했다. 승객 900명과 승용차 700대를 운반하는 Ro-Pax, 최대형 유조선과 천연개스 운반선들, 32만톤 광석운반선 아니라, 이지스(Aegis) 군함과 잠수함도 구축했다. 여행 안내자의 말에 의하면 1 7 천명의 현대 중공업 직원이 하루에 필요한 음식의 규모는, 50마리 (다른 고기로 식단을 바꾼 날은 돼지 75마리. 여름에 삼계탕을 마련할 때에는 1500마리로, 울산 일대의 닭은 며칠 내에 동이 난다.), 그리고 1500 말이라고 한다. 직원들의 식당은 울산시 40 여개 처소에 산재해 있다. 주영씨에 대한 일화, 어록, 傳記, 창업시기 부터 후년의 사업 경영에 얽힌 독창적인 문제해결 기록 , 그와 관련된 많은 이야기와 기록은 후세들에게 교훈과 생에 대한 용기를 것이라 믿는다.

다음으로 우리는 여러분이 아시는 UNESCO 세계 문화 유산 불국사에 갔었다. 임진 왜란 타버렸다가 계속 원형복구되어 국보 7 가지를 간직한 사찰이다. 불교 신도들이, 불상 앞에서 스님과 함께, 염불, 기도, 참배, 참선 하는 경건한 모습을 수있었다. 경주를 기점으로, 남해안 4 방문 팀은 버스 한대로 귀경하고 나머지는 동해안 여행을 계속했다.

신라시대 왕족의 23 왕릉이 뫃여있는 대능원(大陵苑) 거쳐, 책에서만 보던 신라 선덕 여왕대에 건립된 첨성대(瞻星臺) 보았다. 이탤리 피사의 사탑보다는 적은 角度로 기울어져 있었으나, 600 이상을 의연히 버틴 자태는 경이로웠다. 한국 고고학자들 간에는 첨성대의 용도에 대한 많은 연구와 異見들이 있다고 한다.

우리들의 도착 시간이 조금 늦어, 경주 富者 본채 큰대문은 잠겨있었다. 들어갈 수는 없었으나 대문 틈으로 안채와 마당을 드려다 보는 동기들도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랑채, 요석궁에서 한정식 저녁 식사를 하며, 12대에 걸친 최부자집의 Noblesse Oblige 얽힌 여러 사연들, 최부자집의 六然家訓 살림 실행 지침 여섯가지도 음미해보면서, 그토록 오래 富를 대대로 계승했던 저들의 지혜와 용기를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동행하는 동기들과 가족들 일행은 피곤해 보이지도 않고, 안내인에게 열심히 질문하면서 발걸음도 빠르게 가볍게 이동했다. 나름대로 모두 평소에 여러가지 체력 단련을 해서인가?

5 일에는 안동, 단양, 영월, 정선, 평창 등지를 방문했는데, 안동 하회(河回) 마을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한인 영화 배우로 한국 연속 드라마에서는 물론 일본에서도 가수로 인기가 높은 時元의 고향이며, 조선 시대 유학자들 ( 雲龍, 成龍 선생 형제, 世鳴 都事, ) 태어난 곳이다. 풍산(豊山) 柳씨가 대대로 살아온 집성촌(集姓村)으로 한국 전통 가옥과 풍습이 보존된 곳이다. 그래서 13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2 세가 세계에서, 전통 문화를 유지하고 있는 마을을 찾던 하회마을을 한국 전통마을로 지정하고 수행원들과 함께 방문했었다. 하회에 들어서면, Queen’s Road 라는 표시도 있고 여왕 방문 기념 전시관이 있다. 깊은 한국 시골 마을에서, 한국식 진수성찬 앞에 만면 희색을 영국여왕의 대형 사진과 그의 영국행원들의 모습을 보니 신기하다는 느낌이 들며 갑자기 地球도 地球村으로 재해석해야겠구나 싶었다. 河回라는 이름은 낙동강 물이 동쪽으로 흐르다가 S 형으로 마을을 감싸고 도는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하회마을에서도 살던 주인들은, 경주 최부자 처럼, Noblesse Oblige 여러 모로 실천했다 한다. 어떤 해에 낙동강 범람으로 많은 사람들이 급류에 휩쓸려 내려갈 , 하회마을의 부자는 자기가 집을 지으려고 적재했던 목재 전부를 강에 투입시켜 익사 직전의 많은 사람들을 구조했다고 한다. 과객들은 후하게 대접했다. 노자돈이 떨어진 가난한 선비들이 후의를 베푼 집을 떠날 , 대문 벽에 뚤려있는, 어른의 손이 경우 들어갈만한 크기의 둥근 틈새에서 엽전 한두 닢을 꺼내 가지고 수있게 놓은 것을 있었다. 이솦우화에서, 입이 좁은 그릇 속의 개엄나무 열매 (Filbert) 한주먹이나 거머쥔 아이가 손을 수없어 울고 있을 , 곁에 있던 슬기로운 노인이, “ 것을 半만 가지고 손을 빼보아라.” 하는 이야기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인도에서 원숭이들을 잡기 위해, 開口가 협소하고 무거운 질그릇에 당콩을 넣고 원숭이들을 유인해, 욕심 움켜쥔 주먹이 무거운 그릇에서 안빠져나와 수없어 결국 사냥군들에게 잡힌다는 얘기와도 상통한다. 우리도 주먹을 펴야겠다고 생각해보았다.

강원도 영월의 청령포 端宗 유배지에서 500 전에 그가 거닐던 숲을 걸어보았다. 어린 단종이 즐겨 앉곤 했다던 소나무, 망향하며 서북쪽에 두고 궁궐을 그리며 바라보던 , 왕손의 슬픈 운명이 스쳐간 이곳 저곳을 거닐어 보았다.

2018 동계 올림픽 개최지로 지명된 평창의 이미 개설된 ski jump 대를 보았다. 크지 않은 평창이 국제 동기 올림픽을 치룬 후에 많은 시설과 선수촌 건물을 어떻게 뒷수습할 것인가 하고 안내인에게 물으니, 해당 당국이 사항을 아직도 연구 검토 중이라 한다.

다음 날은 강릉에서 여러 곳을 관람했다. 길동 저자 균과 26세에 요절한 그의 어린 누이 詩人 허난설헌(許蘭雪軒)기념관 공원, 申師任堂의 친정 栗谷 선생 생가 烏竹軒, .

양양 쏠비치 리조트 호텔에서 훌륭한 buffet 조반을 마치고 大火災 복건된 洛山寺의 넓은 지경을 답사하면서, 언덕 정상에 높이 서있는 관세음보살상을 보고 紅蓮庵에 가보았다. 의상 대사가 좌선 7 되는 , 바다 속에서 홍련이 솟아 오르고 속에서 관음보살이 나타나 대사에게 법열을 주었다는 전설로 홍련암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했다. 한국 4 觀音聖地의 하나라고 한다. 우리가 방문했을 많은 불교도들이 불공을 드리며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 중에서도 몇몇의 불도들이 신을 벗고 법당에 들어가 참배하는 모습이 보였다.

관동 팔경의 하나라고 하는 청간정(淸澗亭: 한국유형문화재 32) 거쳐 화진포에 도달하니 승만 별장과 일성 별장이 있었다. 38선이 아직도 굳어지기 일성 일가가 와서 쉬었다 가곤 했기에 지금은 일성 별장이라 부른다고 했다. 거기엔 5-6세로 보이는 정일을 포함한 일성 가족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건물에서 조금 쪽에 있는 승만 별장에는 박사와 부인Franziska Donner여사의 거실에 앉은 모습을 실물 인형으로 만들어 놓은 방이 있고, 이박사의 친필 편지(조선에 있는 부친에게 미국 유학 중에 ), 붓글씨, 많이 닳아서 실오라기가 금방 끊길 같은 Franziska 여사의 낡은 장갑, 등과 2 대전 후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 6.25 사변, 그후 자유당 정권 시대의 역사 기록이 전시 되있었다. 근대 한국 역사를 모르거나 왜곡하는 경향이 있는 현대의 한국 젊은 이들이 많이 와서 史實을 보고 배우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학 시절의 승만 박사는 아주 핸섬했고 영부인도 미인이었다. 이박사의 붓글씨는 매우 훌륭해 보였다.

서울로 돌아 오는 도중, 고성에서였던가, 동치미 막국수와 명태 식해 보쌈 점심식사를 하는 , (10 20) 회백의 77 생일이어서, 그를 축하하며 그와 모두의 건강을 아울러 빌었다. 회백 부부는 현지에서 구할 수있는 동동주를 모두에게 대접했고, 5 후엔 金剛 祝祭 이름 하에 모이자, 10 후에는, 전에 남북이 통일될 테니 금강산에서 재회하자, 함흥식해를 함흥에서 먹도록 하자 하며 최상의 희망사항들을 마음 토로하였다.

첫날의 기념식 후에 호텔 프레지덴트에서 있었던 만찬을 포함해서 모두 네번의 만찬이 있었는데, 마다 덕담과 농담과 노래등으로 흥미진진한 시간을 가졌다. 우리 동기 중에 출중한 가수들이 그렇게 많을 몰랐다. 윤경, 준우, 현상, 승균, 일균 등씨는 늦었지만 남성 합창단을 하나 조직하는 것이 어떨지? 외에도 Mrs. 기용, Mrs. 영철, Mrs. 길수 제씨들의 노래 솜씨는 특출했다. 그랬듯이 우리들의 웃음을 참지 못하게 하는 공창, 진호의 해학은 아주 높은 段數였고, 청중들 중에는 그들의 joke 하나라도 빠질세라 노트에 적는 열성 joke공부파도 있었다.

공창은 좌중을 한참 요절 폭소하게 만든 계속 말했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 “여러분, 요즘 한국 연속극 보십니까? , 연속극에서는, 앞으로 자기 애인이나 남편이 법한 남자를 오빠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 동창 부인들도 내일부터 남편을 여보라 하지 말고 오빠라고 부릅시다!” 어떤 부인은 공창의 말이 끝나자 당장 남편 호칭을 오빠라고 크게 불러서 모두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는 마치 어떤 medical convention 이나 symposium 참석하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킬 만큼 의학 여러 분야에 대한 열띤 토론과 경험담이 쏟아지는가 하면 부인들도 서슴없이 마이클를 잡고 제각기 생각을 피력했다. 버스 안에서, 어떤 부인은, “ 한마디만 말하겠어요. , 시집 왔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선언해서 모두의 박수를 받았다.

양양 쏠비치 리조트 호텔에서 연어정식으로 만찬 , 내년 미주 동기회 회장으로 영철을 만장 일치로 선출하였다. 영철은 차기 회장직을 즉각 수락하고, 최선을 다할 것을 일장 연설로 선언했고 모두의 호응을 받았다.

우등 버스좌석은 아주 여유로웠다. 안내원들은 전문 지식이 풍부했고 한사람은 대학에서 史學을 전공한 박식가였다.

즐거운 공식 여행 6 7일이 끝나고 다음 아침에는 서울대학교 관악 캠퍼스를 방문하여 과거 40-50 간에 성장한 세계 수준의 거대한 서울 종합 대학 캠퍼스의 위용을 듣고 보았다. 오후에는 용산 이촌동에 있는 국립중앙 박물관을 방문하고 저녁에는 정동극장에서 춘향전의 전통 미술(율동)무대 공연 [微笑] 감탄하며 관람했다.

나는 그후 이틀 동안, 개인 친척 방문 스케쥴이 있어서, 나머지 문화탐방 행사에 참석 못했지만, 끝까지 참여했던 동기들의 말을 듣건데, 北村 한옥마을, 경복궁, 명동 예술 극장 연극 공연 관람, 이어서 最終日의 철원 안보 관광 1 여행은 모두 흥미롭고 교육적이었다고 했다.

이번 금축제는 자신과 동기들 모두에게 이름 그대로, 졸업 50주년 축하의 기쁨을 만끽하게 주었고, 동기들이 재회의 회포를 정답게 수있었던 좋은,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조국의 생활 이모 저모와 도시들의 외각에서 숨쉬는 전통의 고장들을 체감할 기회를 , 오래 두고 추억될 훌륭한 행사였다. 한편, 여러가지 사정으로 참석 못한 동기들을 생각하니 매우 아쉬웠다.

행사 계획을 완벽하게 세우려고, 미리 현지 답사를 했을 뿐더러 여행 내내 버스의 반장노릇을 계속하면서, 동창들의 편의를 세심하게 돌봐주었고, 특별히 문화탐방 행사 때에는, 주로 미국에서 방문한 동기들을 위해서 물심양면으로 수고를 아끼지 않은 재한 준비위원들 ( , 재흥, 일균, 흥재) 十五亮 南齋 영보회장에게 감사한다.

모두들, 5 후엔 미국에서, 10 후에는 한국에서 다시 만날 기회가 있기를 다짐하며 기원하였고, 그때 까지 일상 생활에서 매일 충실할 것을 默言으로 약속들 하면서, 在韓 동기들은 사랑하는 가정으로, 在美동기들은 미국에 있는 각자의 2 고향을 향해 歸路에 올랐다. 참으로 흐뭇하고 꿈같은 주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