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 깊고 기리 기억에 남을 금축제를 아쉽게 끝내고 웹사이트를 정리 하였습니다. 새로 조은순의 이름다우면서 정서어린 시와 음악을 위한 페이지를 신설 하였고 역시 열성적으로 보내는 김진호 동기의 볼거리는 여전히 재미가 있고 앉아서 우리나라 구경을 할 수 있는 곳입니다. 특히 율곡선생의 페이지에 진호형의 친필이 있으니 꼭 방문 하십시오. 그리고 금축제의 페이지는 언제 끝이 날지 모르겠습니다. 사진을 모으고 또 모아 보니 정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군요. 카메라 값이 떨어지고 필림이 필요 없어지니 사진을 많이 찍게 되고, 그러니 좋은 것을 고르기가 힘이 듭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성원은 늘 이 웹을 다듬는데 피로를 들어 줍니다. 최근에 서울의대총동창회에서 모둔 각 동기의 웹을 합치자고 하니 연구를 하면서 우리의 독창적인 것을 고수 하면서 참여하도록 하는 것을 연구 하여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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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후 제 1 신>

歡喜와 參與의 “자랑스러운 金祝祭”를 마치고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친애하는 제15회동창회 회원 여러분 !


우리가 오랫동안 준비해 오던 졸업50주년기념 ‘金祝祭’를 성대하고도

원만하게 마치고 이제 다소 여유로운 마음으로 여러분께 인사드리게 되니

매우 기쁘고 또한 우리 모두의 역량을 다시 뽐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가슴

뿌듯합니다.


무릇 50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역정 동안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경영해 온 뜻있고 보람 찬 세월들을 되짚어보니, 우리의 “금축제”가 실로

무한히 자랑스러웠습니다.


학창시절의 남다른 행적은 이미 기념식상의 ‘기념사’ 와 만찬석상에서의

‘동영상’에서 회고한 바 있으며, 우리가 지난 세월에 일곱 번에 걸쳐 발간한

‘문집’에 기록한 우리 개개인의 피땀 어린 역사와 학문적 성취, 인술구휼의

헌신과 인류애 발현, 그리고 넘쳐나는 정서적 감흥의 표출...은 우리의

50년이 결코 범상치 않았음을 입증해 주었습니다.


이처럼 “자랑스러운 金祝祭” 행사에 한국과 미국에서 78 명의 회원(현

회원 총 103 명)이 여러 형태로 참여해 주셨고, 그 중 51 명의 회원은 가족과

함께(합해서 96 명) 기념식과 기념 만찬에도 참석하셨습니다.

이어서 진행된 금축제 기념 ‘내나라 여행(4~7일)’에는 가족 포함 71 명이

참가하여 그간 미처 챙겨보지 못했던 조국의 괄목할 만한 발전과 변화에

놀라워하고 또 흐뭇해했으며, 오랫동안 쌓아 두었던 서로의 기쁨과 영광,

그리고 보람과 애환을 나누는 애틋한 시간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모든 현상은 우리 제15회동창회 회원의 협동심과 응집력의 소산이요

역량의 반영이며 또 그것이 바로 우리의 트레이드마크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역사를 이룩하신 회원 여러분은 장하고 위대 하십니다.

참으로 위대 하십니다. 그리하여 참으로 참으로 감사합니다. 끝.


2011. 10. 28.

서울대학교의과대학 제15회동창회 회장 심 영 보


심 영보 회장 그리고 금축제 준비위원 여러분,

축제의 여운이 아직도 하게 느껴집니다. 행사관계로 힘들었던피로도 이젠 다 회복이 되었겠지요.

여기 재미 동창회원들은, 歸美한 직후에 곧 다음과 같은 생각에 도달했습니다: 여러분의 수고에 조금이나마감사하는 뜻으로 또, 혹여 여기저기에서 초과비용이 들었을 터인데하며 일금 2500불을 재미 동창회 명의로 전달하자고 말입니다. 재미 동창들에게 e-mail로 수소문해 본 결과, 단 한사람도 이 생각에 異意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우리 모두가 여러분의 수고에 감사하고 있기때문입니다”. 어떤 동문은, “필요하다면 좀 더 걷어서 보내자!”라고도 했습니다.

곧 심 회장 앞으로, 수표나 전신송금 방법을 통해서 보내겠습니다.

재미 15회 동기회,

이 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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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 동문:

나는 11-4 집에 와서 e-mail 보고도 답을 못 했네
정말 좋은 동창회였고 자네와 영보, 그외 협조한 동문에게 참 고맙네 여행예정---하나도 착오없이 말일세
이번여행에 면도기 도움도 고맙고
서울 송금은 두말할것도 없이 찬성이고
또 연락 하세 항상 건강 하기를 그리고 부인께도 안부 부탁 하네
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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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祝祭  醫大 卒業 50 周年 記念 行事 -- 다녀와서

 한수(’61)

축제 행사 내내 계속된 청명한 가을 날씨를 만끽하며 지난 10 중순, 15(1961년도 졸업) 동기들과가족들이 졸업 50 주년을 기념하며 한국에서 모였다.

첫날의 기념식은 모교 대강당에서 재미-재한 동기들 그리고  가족들을 합한 96명과  정기 학장, 민호 부학장,  용현 모교 동창회회장 제위를 비롯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히 그리고 뜻있게 거행되었다.

正裝하고 기념식에 당도한  사람에게, 강당 입구 로비에서는 이름 뱃지와 카네이션을 후배 자원봉사자들이 일일이 옷섭에 달아주었다. 그순간, “ 얼마만인가, 20  초반의 우리들이 바로 여기서서성거리며 의학도의 기초를 닦았던 때가? 모두들  인생 여정을 지내고, 상징적인 종착역 중의 하나에 이제 도착하는구나!” 하는 향수와 잔잔한 설레임이 일었다. 식장에 입장하는 복도에서, 반가운웃음과 악수와 인사는, “, 졸업하고 처음 보는  아니야?”, , 오랜 만이다.  많이 변했구나.”, 혹은  전혀 안변했어!” 하는 탄성으로 이어져, 기념식 내내, 장내의 분위기는 상기되어 있었다. 나이티가 나는 동기들은, 우리들이 지내온 세월이 아주 길었구나 하고 느끼게 했지만, 한편 반가운  모습과 童顔을  잘지켜온 친구들도 더러 있었다.

학교측의 환영사, 축사에 이어, 동문 대표로  승균 재미 정신과 교수의 金祝祭를 맞는 感激 제하의 기념사가 있었다. 완숙한 자세와 뛰어난 언변으로, 그는 기념사를 통해, 6.25  4.19 전후의 격동기를 경험한 15 동창들의 특출한 행적과, 노력과 결속력을 구구절절히 재음미했으며, 참석한 동기들에게 15 동창으로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동문으로서의 긍지를 다시 한번 고조시켜 주었다. (그의 기념사 전문은 별지에 揭載될 것이다)

이어서 15 동기 회원들로 부터 모은 성금 3천만원을 모교와 모교동창회 발전기금으로 전달하였고, 회백 동문도 모교 발전기금을 위해 개인적으로 일금 만불을  학장에게 손수 전달하였다. 기념식 순서에 따라,  영보 동기회장과 편집위원들의 노고로 이루어진, 15 동창생들의 7 번째 문집 <자랑스러운 금축제> 네권을 모교 학장실, 도서관 그리고 모교 동창회에 증정하였다.

기념식이 끝난 직후, 학생회관 1 강의실 입구 앞에서, 우리 동기의 자랑인 畵伯 又賢  眞浩 교수 [시계탑의 겨울] 증정 제막식이 있었다. 그림은 80호의 대형 유화로, 차후 2 학년 강의실 출입문 상단에 현수될 것이다. 제막식에는  진호 자신과  학장을 비롯해 최부학장, 학생 대표들, - 동창회 임원과 관심회원들이 참여하였다. 모교를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두고 두고 감탄의 눈길을  그림 속의 시계탑은 영롱한 후광과 같은 색채를 뿜어내는  같았다. 이는  세월을 버티고시간을 가늠하는 하나의 시계탑일  아니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모든 동문들의 가슴에 각인된 영원한 긍지의 상징이기 때문일 것이다.

시계탑 그림 기념액자 증정 제막행사와 거의 동시에, 건물 한편에서는 [함춘 미술전] 출품 축하회가있었다. 미술전에 출품한  창욱 ,  진호,  휘열,  종근,  두현, 그리고  흥재 동문들은 관람자들을 위해 자기 작품에 대한 미니 해설 폈다. 동기회를 대표해서  일균과  기용은 미술전에 출품한 동기 예술가들에게 기념품과 축하패를 증정하였다.

 이어, 대학병원 서편에, 7개월  신축 개원된 서울대학교 癌病院을 순람하며, 이렇듯 훌륭한 병원을 건립한 선후배들의 노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암병원 건물 6  [하늘 공원] 전망대에서 창경궁을 조망하면서, “나는 서울의대 동문으로서, 모교와 한국의학의 발전에 나는 얼마나, 어떻게 기여했던가 ?” 하며 씁쓸한 자문자답을 해보았다.

스케쥴에 따라 우리들은 대형 버스 2 대로, 기념 만찬장 (서울시청 , 호텔 프레지덴트)  이동, 31 모짜르트 홀에 다시 모였다. 사회자  진호 선생이, 작고한 31명의 동창생들을 위한 묵념을 선언하니 장내의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유명을 달리한 그들과 유가족들을 생각하며, 동시에  자신의실존과 인생현주소를 다시 묵묵히 점검하면서, 지금  자리에  있는 것에 대한 감사와 미래에 대한 형용하기 여러운 경외감을 느꼈다.

다음으로는  금축제의 계획을 주도하고 시종 빈틈 없이 추진해 , 南齋  영보회장의 환영인사와, 재미 동기 회장(筆者) 홈커밍 인사가 있었다. 인사 말미에, 미국측 동창들의 뜻을 뫃아 만들어 감사패를 , 심회장에게 전달하였다. 감사패 증정과 아울러 나는 남재  영보의  2 雅號를, 諸葛亮의 이름 亮을 따서, 15회의 제갈 량이라는 뜻인 [十五亮]으로 함이 어떠냐고 제의하기도 했다.

 삼봉과  재승 동문들의 축사에 이어,  은경씨 (Mrs.  동해) 피아노 반주로 있었던  문자씨(Mrs.  길수) 우아한 독창 Händel  Largo  연준의 [청산에 살으리랏다] 기념만찬의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고, 우리들의 감정을 잔잔하게 하는  하였다. 동창들의 사진으로 엮어진 금축제 동영상 관람후, 예측하지 못했던  두영 박사의 만세삼창 건배제의 함성에 좌중은 폭소로 화답하며 축배를 기울였다.

화기애애하게 진행된 만찬은, 정자씨(Mrs. 철륭) 피아노 반주에 맞춰 일동의 교가합창과 비공식 同期會歌  인희  [모닥불] 제창으로 끝났다.

기념식 다음  부터, 동기회 축제 준비 위원들과 [하나 여행사] 협동으로 기획된 [내나라 여행],남해안과 동부권 방문을 6 7일에 하는 -스로, 우리 일행 71명과, 3인의 운전기사, 3인의 전문 여행안내자를 포함해 77명이 우등버스 3 대에 분승해서 시작되었다.  버스의 좌석번호는 매일 아침,부인들이 제비를 뽑아 무작위로 결정되었기에 모두 보다 많은 친구들과 담소할 기회를 가졌었다. 참가 인원의  3 분의 1 처음3 4 만을 끝내고 귀경했지만 나머지 3분의 2 인원은6 7  -스를 관광했다.

 글에서, 나는 Internet에서나 전문여행가들의 여행기, 또는 Lonely Planet Travel Guide, Fodor’s Travel Guides 같은 여행안내 책자들이 자세히 설명해주는 式의 事實 報告를 피하고, 우리가 [내나라 여행]에서 보고 들은 것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것들을 간추려 간단히 기술하고자 한다.

처음 방문지인 경기도 화성 KIA자동차 공장 견학은 매우 흥미로웠다. 관람 방문객들을 위해 마련된 깔금한 강당은 우리 일행을 수용하고도 많은 빈 자리가 남아있었다.  15 분 간 슬라이드쇼로 차 제조, 판매과정 및 통계, 공장운영, KIA 회사의 약력 등을 전문적으로 여자직원 한사람이 우리들에게 視聽하게 한 다음 공장 내부로 우리들을 안내했다. 차 제조 과정의 상당 부분이 Robot에 의해 치뤄지고 있었다. 차는 매 30초 마다 완성되 나온다고 했다. 그리고는 터널로 공장 옆 하이웨이를 가로 건너질러,  500-700대를 수용하는 대형 화물선에, 5-10Cm 간격으로 일사불란하게 그 완성품들을 적재한다고 했다. 먼지 방지 필요성 때문에 차체 페인트 과정은 방문객들이 가까이에서 볼 수 없게 되있었으나 기타의 과정은 1-3미터 거리에서 볼 수있었다. 공장 내부는 밝고 깨끗했다. 공장 기술자들은 우리들을 의식할 사이도 없이 일에 전념하고들 있었다. 지금은 현대그룹이 KIA를 경영하고 있으며 現代車와 KIA車 엔진은 동일하다고 했다. 첨단 기술을 대거 동원한, 참으로 거대하고도 훌륭한 자동차 공장이었다.

全南 광주 광역시의 아파트단지들을 경탄의 눈으로 멀리 건너다보며 흑두부정식 점심 식사를 한 후, 세계문화유산의 하나인 보성 고인돌공원(支石基公園)을 둘러봤다. 순천 灣의 유명한 日沒은 못봤지만 석양에 비친 아름다운 순천 만의 풍광을 조망할 수있었다.

순천 송광사에 들렀다. 그 절에 대한 많은 사연이 소개되었지만, 작년에 열반한 法丁스님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평생 無所有를 설법했던 스님이, “일하는 사람들의 노고를 줄여, 壽衣는 말고 승복 입은 채 茶毘(다비:불교에서의 火葬) 해 달라. 저승에 까지 내 말의 빚을 가지고 가고 싶지 않으니 나 떠난 후 더 이상 내 책은 출간하지 말라는 유언에 따라 그의 다비식이 거행되었던 사찰이기도 하다.

순천 다음에 간 곳은 여수. 여수의 곳곳에는 이 순신장군의 족적이 있었다. 장군이 집무하던 전라좌수영 진남관(鎭南館) 은 여러번 보수되었던 단층 목조 건물로, 진남관이란 이름에는 남쪽의 왜구들을 鎭壓하고 南海域 일대를 평정한다는 뜻이 있다고 한다. 일제 강점 때에는, 목조 건물이라 일본인들이 다른 건물들 처럼 쉽게 파괴할 수도 있었으나, 일본 문화를 조선에 투입시키는 방편으로, 여수 중학교, 야간 상업 중학교로 썼기에 보존이 되었고, 지금은 국보 304호로 지정되 있다 한다. 합천 해인사의 팔만 대장경을 보관하는 건물과 몇 안되는 큰 목조건물 중의 하나이다. 지금은 240평이나 되는 큰 건물이지만 이 순신 장군이 전라 좌수영으로 썼을 때는 훨씬 더 컸으리라는 사학자들의 의견이 있다 한다.

우리들은 통영에서 케이블카를 탑승해 보았는데, 케이블카가 닿는 미륵산 정상에서 보면, 통영항의 바다 경치는 아기자기한 아름다운 섬들과 푸른 해안선 때문에

동양의 나폴리라 불린다고도 하니, 가히 그럴만 하구나 하고 느꼈다.  미륵 정상에서는 한산대첩이 있었던 곳을 조망할 수도 있었다, 지금은 평온하고 아름다운 海路이나, 400 여년  수많은 海戰亡靈들이 고통과 애환을 안고 水漿된 곳이었음을 상기하면서.

여행  들렸던 호텔이 5성급이어서 그러했겠지만, 모든 호텔들은 우리들의 탄성을 받을만큼, 정교하면서도 웅장하고, 편리했고, 직원들은 매우 친절하고, 음식도 명성에 걸맞게 전혀 손색 없이 훌륭했다. 巨濟市의 HOTEL C PALACE에서 16 아침, 버스로  출발하려는데, 버스 3  옆으로, 호텔남녀 직원 십여명이, 흑백 유니폼을 입고, 일열로 서서 손을 흔들며 미소로 우리들을 전송하는 것이아닌가. 우리는  황송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마음 씀씀이와 그들 특유의 여유가  보였고, 결국 우리들의 기분은  상쾌해 졌고 우리도 버스 안에서 손을 흔들어 그들에게 답례하며 사진도 찍었다.

거제시에서  하나의 해안절경을, 전망대(신선대)에서 내려다  , 소매물도 (小每勿島) 유람선을타고 낭만적인 등대섬과 남해의 풍광을 보니, “참으로 아름답다 감탄사가 연거푸 나왔다. 거제의6.25 포로 수용소 기념관은 많은 회원들이 이미 전에 방문한 곳이라 이번 여행 계획에도 없고 해서들리지 않고, 부산행 거가대교 (巨加大橋)  올랐다.  거대한 거가대교는, 거제시 장목면에서 시작, 바다 위의 10여里를 가덕도 거점을 거쳐 나머지  10里에 해당하는 해저 침매 터널을 통과하면부산 강서구 천가동에 당도한다. 6년간의 공사 , 작년(2010) 12 14일에 개통되었고, 대교 건축 세계 기록 5 왕이라 한다. 바다 위에 있는  길고 웅장한 사장교를 건축한 것도 경탄할 업적이지만,바다 밑으로  많은 차량이 소통할  있는 터널을 건축한 대한민국의 교가건축 중공업 기술에 우리는 경의를 표하지 않을  없었다.

부산 근교, 해운대의 수려한 모습이  보이는 동백섬에 우리 일행이 도착한 것은 그곳의 [누리마루] 가보기 위해서였다. 누리마루는 2005  2 세계 21개국의 정상 회담 (APEC)  열렸던 곳이다. 당시의 회의장 내부와 21 개국 대표들의 좌석, 정상회에 참석한 귀빈들에게 대접했던 음식의 실물 크기 모형, 3  입구의 진주 자개 예술품 등이 일반에게 전시되어 있었다. 사방이 유리로 되있고,기둥과 창문들은 상하 수직으로 서있지 않고, 윗부분이 밖으로  기우러져 나와 있어, 거대한 水晶유리 盞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독특한 건축물이었다. 한국인들의 첨단 건축술과 세계 정치계에서의높은 위상을 실감케 해주는 훌륭한 방문지였다.

日程  4일엔 경남 울산, 세계  일위의 조선소 현대 중공업을 견학하였다.   周永  생애 후반 40년에 이룩한 거대한 중공업 단지는 울산의 거의 전부를 포괄하고 있는 듯했다. 승객 900명과 승용차 700대를 운반하는 Ro-Pax, 최대형 유조선과 천연개스 운반선들, 32만톤  광석운반선  아니라, 이지스(Aegis) 군함과 잠수함도 구축했다. 여행 안내자의 말에 의하면 1 7 천명의 현대 중공업직원이 하루에 필요한 음식의 규모는,  50마리 (다른 고기로 식단을 바꾼 날은 돼지 75마리. 여름에삼계탕을 마련할 때에는  1500마리로, 울산 일대의 닭은 며칠 내에 동이 난다.), 그리고  1500 말이라고 한다. 직원들의 식당은 울산시 40 여개 처소에 산재해 있다.  주영씨에 대한 일화, 어록, 傳記, 창업시기 부터 후년의 사업 경영에 얽힌 독창적인 문제해결 기록 , 그와 관련된 많은 이야기와기록은 후세들에게  교훈과 생에 대한 용기를  것이라 믿는다.

다음으로 우리는 여러분이  아시는 UNESCO 세계 문화 유산 불국사에 갔었다. 임진 왜란  타버렸다가 계속 원형복구되어 국보 7 가지를 간직한  사찰이다. 불교 신도들이, 불상 앞에서 스님과함께, 염불, 기도, 참배, 참선 하는 경건한 모습을  수있었다. 경주를 기점으로, 남해안 4 방문 팀은 버스 한대로 귀경하고 나머지는 동해안 여행을 계속했다.

신라시대 왕족의 23 왕릉이 뫃여있는 대능원(大陵苑)  거쳐, 책에서만 보던 신라 선덕 여왕대에건립된 첨성대(瞻星臺) 보았다. 이탤리 피사의 사탑보다는 적은 角度로 기울어져 있었으나, 600이상을 의연히 버틴  자태는 경이로웠다. 한국 고고학자들 간에는  첨성대의 용도에 대한 많은연구와 異見들이 있다고 한다.

우리들의 도착 시간이 조금 늦어, 경주  富者  본채 큰대문은 잠겨있었다. 들어갈 수는 없었으나대문 틈으로 안채와 마당을 드려다 보는 동기들도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랑채, 요석궁에서 한정식 저녁 식사를 하며, 12대에 걸친 최부자집의 Noblesse Oblige 얽힌 여러 사연들, 최부자집의 六然家訓   살림 실행 지침 여섯가지도  음미해보면서, 그토록 오래 富를 대대로 계승했던 저들의 지혜와 용기를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동행하는 동기들과 가족들 일행은 피곤해 보이지도 않고, 안내인에게 열심히 질문하면서 발걸음도빠르게  가볍게  이동했다. 나름대로 모두 평소에 여러가지  체력 단련을  해서인가?

 5 일에는 안동, 단양, 영월, 정선, 평창 등지를 방문했는데, 안동 하회(河回) 마을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한인 영화 배우로 한국 연속 드라마에서는 물론 일본에서도 가수로 인기가 높은  時元의 고향이며, 조선 시대  유학자들 ( 雲龍,  成龍 선생 형제,  世鳴 都事, ) 태어난 곳이다. 풍산(豊山) 柳씨가 대대로 살아온 집성촌(集姓村)으로 한국 전통 가옥과 풍습이  보존된 곳이다. 그래서 13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2 세가 세계에서, 전통 문화를 유지하고 있는 마을을 찾던  하회마을을 한국 전통마을로 지정하고 수행원들과 함께 방문했었다. 하회에 들어서면, Queen’s Road 라는 표시도 있고 여왕 방문 기념 전시관이 있다.  깊은 한국 시골 마을에서, 한국식 진수성찬 앞에만면 희색을  영국여왕의 대형 사진과 그의 영국행원들의 모습을 보니 신기하다는 느낌이 들며 갑자기 地球도 地球村으로 재해석해야겠구나 싶었다. 河回라는 이름은 낙동강 물이 동쪽으로 흐르다가 S  형으로 마을을 감싸고 도는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하회마을에서도  살던  주인들은, 경주 최부자 처럼, Noblesse Oblige  여러 모로 실천했다 한다.어떤 해에 낙동강 범람으로 많은 사람들이 급류에 휩쓸려 내려갈 , 하회마을의  부자는 자기가집을 지으려고 적재했던 목재 전부를 강에 투입시켜 익사 직전의 많은 사람들을 구조했다고 한다.과객들은 후하게 대접했다. 노자돈이 떨어진 가난한 선비들이 후의를 베푼 집을 떠날 , 대문  벽에 뚤려있는, 어른의 손이 경우 들어갈만한 크기의 둥근 틈새에서 엽전 한두 닢을 꺼내 가지고  수있게  놓은 것을   있었다. 이솦우화에서, 입이 좁은 그릇 속의 개엄나무 열매 (Filbert)  한주먹이나 거머쥔 아이가 손을  수없어 울고 있을 , 곁에 있던 슬기로운 노인이, “ 것을 半만 가지고 손을 빼보아라.” 하는 이야기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인도에서 원숭이들을 잡기 위해, 開口가 협소하고 무거운 질그릇에 당콩을 넣고 원숭이들을 유인해, 욕심  움켜쥔 주먹이 무거운 그릇에서 안빠져나와   수없어 결국 사냥군들에게 잡힌다는 얘기와도 상통한다. 우리도 주먹을  펴야겠다고 생각해보았다.

강원도 영월의 청령포 端宗 유배지에서 500 전에 그가 거닐던  숲을 걸어보았다. 어린 단종이 즐겨 앉곤 했다던 소나무, 망향하며 서북쪽에 두고  궁궐을 그리며 바라보던  , 왕손의 슬픈 운명이 스쳐간 이곳 저곳을 거닐어 보았다.

2018 동계 올림픽 개최지로 지명된 평창의 이미 개설된 ski jump 대를 보았다.  크지 않은 평창이국제 동기 올림픽을 치룬 후에  많은 시설과 선수촌 건물을 어떻게 뒷수습할 것인가 하고 안내인에게 물으니, 해당 당국이  사항을 아직도 연구 검토 중이라 한다.

다음 날은 강릉에서 여러 곳을 관람했다.  길동 저자  균과 26세에 요절한 그의 어린 누이 詩人허난설헌(許蘭雪軒)기념관 공원, 申師任堂의 친정   栗谷 선생 생가 烏竹軒, .

양양 쏠비치 리조트 호텔에서 훌륭한 buffet 조반을 마치고 大火災  복건된 洛山寺의 넓은 지경을답사하면서, 언덕 정상에 높이 서있는 관세음보살상을 보고 紅蓮庵에 가보았다. 의상 대사가 좌선 7  되는 , 바다 속에서 홍련이 솟아 오르고  속에서 관음보살이 나타나 대사에게 법열을 주었다는 전설로 홍련암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했다. 한국 4  觀音聖地의 하나라고 한다. 우리가 방문했을  많은 불교도들이 불공을 드리며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 중에서도 몇몇의 불도들이 신을 벗고 법당에 들어가 참배하는 모습이 보였다.

관동 팔경의 하나라고 하는 청간정(淸澗亭: 한국유형문화재 32)  거쳐 화진포에 도달하니  승만 별장과  일성 별장이 있었다. 38선이 아직도 굳어지기   일성 일가가 와서 쉬었다 가곤 했기에 지금은  일성 별장이라 부른다고 했다. 거기엔 5-6세로 보이는  정일을 포함한  일성 가족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건물에서 조금  쪽에 있는  승만 별장에는  박사와 부인Franziska Donner여사의 거실에 앉은 모습을 실물  인형으로 만들어 놓은 방이 있고, 이박사의 친필 편지(조선에 있는 부친에게 미국 유학 중에 ), 붓글씨, 많이 닳아서 실오라기가 금방 끊길  같은 Franziska 여사의 낡은 장갑, 등과 2  대전 후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 6.25 사변, 그후 자유당 정권시대의 역사 기록이 전시 되있었다. 근대 한국 역사를  모르거나 왜곡하는 경향이 있는 현대의 한국 젊은 이들이 많이 와서 史實을  보고 배우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학 시절의  승만박사는 아주 핸섬했고 영부인도 미인이었다. 이박사의 붓글씨는 매우 훌륭해 보였다.

서울로 돌아 오는 도중, 고성에서였던가, 동치미 막국수와 명태 식해 보쌈 점심식사를 하는 , (10 20)   회백의 77 생일이어서, 그를 축하하며 그와 모두의 건강을 아울러 빌었다. 회백 부부는 현지에서 구할 수있는 동동주를 모두에게 대접했고, 5 후엔 金剛 祝祭 이름 하에 모이자, 10  후에는,  전에 남북이 통일될 테니 금강산에서 재회하자, 함흥식해를 함흥에서 먹도록하자 하며 최상의 희망사항들을 마음  토로하였다.

첫날의 기념식 후에 호텔 프레지덴트에서 있었던 만찬을 포함해서 모두 네번의 만찬이 있었는데,  마다 덕담과 농담과 노래등으로 흥미진진한 시간을 가졌다. 우리 동기 중에 출중한 가수들이 그렇게 많을  몰랐다.  윤경,  준우,  현상,  승균,  일균 등씨는  늦었지만 남성 합창단을하나 조직하는 것이 어떨지?  외에도 Mrs.  기용, Mrs.  영철, Mrs.  길수 제씨들의 노래 솜씨는 특출했다.  그랬듯이 우리들의 웃음을 참지 못하게 하는  공창,  진호의 해학은 아주 높은段數였고, 청중들 중에는 그들의 joke 하나라도 빠질세라 노트에 적는 열성 joke공부파도 있었다.

 공창은 좌중을 한참 요절 폭소하게 만든  계속 말했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 “여러분, 요즘 한국 연속극  보십니까?  , 연속극에서는, 앞으로 자기 애인이나 남편이  법한 남자를 오빠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 동창 부인들도 내일부터 남편을 여보라 하지 말고 오빠라고 부릅시다!” 어떤 부인은 공창의 말이 끝나자 당장 남편 호칭을 오빠라고 크게 불러서 모두 한바탕 웃음을터뜨렸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는 마치 어떤 medical convention 이나 symposium 참석하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킬만큼 의학 여러 분야에 대한 열띤 토론과 경험담이 쏟아지는가 하면 부인들도 서슴없이 마이클를 잡고 제각기 생각을 피력했다. 버스 안에서, 어떤 부인은, “ 한마디만 말하겠어요. , 시집  왔다고생각합니다!!” 라고 선언해서 모두의 박수를 받았다.

양양 쏠비치 리조트 호텔에서 연어정식으로 만찬 , 내년 미주 동기회 회장으로  영철을 만장 일치로 선출하였다.  영철은 차기 회장직을 즉각 수락하고, 최선을 다할 것을 일장 연설로 선언했고모두의 호응을 받았다.

우등 버스 좌석은 아주 여유로웠다. 안내원들은 전문 지식이 풍부했고   한사람은 대학에서 史學을 전공한 박식가였다.

즐거운 공식 여행 6 7일이 끝나고 다음  아침에는 서울대학교 관악 캠퍼스를 방문하여 과거 40-50 간에 성장한 세계 수준의 거대한 서울 종합 대학 캠퍼스의 위용을 듣고 보았다. 오후에는 용산이촌동에 있는 국립중앙 박물관을 방문하고 저녁에는 정동극장에서 춘향전의 전통 미술(율동)무대공연 [微笑] 감탄하며 관람했다.

나는 그후 이틀 동안, 개인 친척 방문 스케쥴이 있어서, 나머지 문화탐방 행사에 참석 못했지만, 끝까지 참여했던 동기들의 말을 듣건데, 北村 한옥마을, 경복궁, 명동 예술 극장 연극 공연 관람,  이어서 最終日의 철원 안보 관광 1 여행은 모두 흥미롭고 교육적이었다고 했다.

이번 금축제는  자신과 동기들 모두에게 이름 그대로, 졸업 50주년 축하의 기쁨을 만끽하게  주었고, 동기들이 재회의 회포를 정답게  수있었던 좋은,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조국의 생활 이모 저모와  도시들의 외각에서 숨쉬는 전통의 고장들을 체감할 기회를 , 오래두고 추억될 훌륭한 행사였다. 한편, 여러가지 사정으로 참석 못한 동기들을 생각하니 매우 아쉬웠다.

행사 계획을  완벽하게 세우려고, 미리 현지 답사를 했을 뿐더러 여행 내내  버스의 반장노릇을계속하면서, 동창들의 편의를 세심하게 돌봐주었고, 특별히 문화탐방 행사 때에는, 주로 미국에서 방문한 동기들을 위해서 물심양면으로 수고를 아끼지 않은 재한 준비위원들 ( ,  재흥,  일균,  흥재) 十五亮 南齋  영보회장에게 감사한다.

모두들, 5 후엔 미국에서, 10 후에는 한국에서 다시 만날 기회가 있기를  다짐하며 기원하였고, 그때 까지 일상 생활에서 매일 충실할 것을 默言으로 약속들 하면서, 在韓 동기들은 사랑하는 가정으로, 在美동기들은 미국에 있는 각자의  2 고향을 향해 歸路에 올랐다. 참으로 흐뭇하고 꿈같은 주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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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祝祭에 다녀와서

裕林 徐休烈

安保觀光을 다녀와서 

10 月 23 日 午前 8時 Sunbee 호텔 에서 출발, 하루 종일, 鐵原을 중심으로 한 관광 일정인데 16 명 이외, 우리 뒷바라지 하기위해 趙日均부부가 참여해줘 18 名이 “하나투어” 광강 Bus 에 실려, 沈英補(1)의 안내, 인솔, 해설을 받아가며 출발했다. 
하늘은 높고, 공기는 맑고, 바람은 시원해서 소풍가기 알맞도록 날씨같았다. 
金祝祭가 시작한날 13 日부터 오늘까지 빈틈없는 일정이엇건만 모두 元氣가 왕성, 조금도 지쳐보이는 同期生이 없어보이니 老益壯이 놀라웠다. 
서울에서 鐵原까지는 100 Km 남짓, 서울을 빠지기전 지나가는곳이, 苑南洞, 惠化洞, 明倫洞, 三仙桐, 敦岩洞 등이어서 半世記前에 地方에서 올라와 下宿하느라고 轉轉하던곳이어서 이름은 익숙하지만 알아볼수없이 변했다. 그때 즐겨다니든 東都劇場- 흙바닥에서 앉아서 접촉한 눈부신 西洋俳優-은 흔적도 없이 살아진지 오래뒸고, 6.25가 나면서 서울시민이 처음 銃聲을 들은 미아리고개도 이름만 남아있을뿐, 옛흔적은 자취가 없지만 지난날을 抽想할수있었음은 우리 모두 비슷한 경험을 힜기때문일께다. 
交通이 복잡해서 천천히 달렸지만 지난날을 회상하며 지나니 조금도 지루한지 모르게 여행할수있었다. 중간지점, 옛 38線자리에서 잠깐 휴식, 사진 찍고,生理 조절하고, 日均, 英補婦人께서 나눠주신 간식으로 배를 채우니 피곤한줄을 모르게 月井里에 가까이 오니 옛생각이 난듯, 軍服務시절 이근처에서 지낸 경험을 몇이 주거니 받거니 나누니 거의 午正이 되어 땅굴에 도착하였다. 
제2땅굴 가기 직전 軍哨所를 지나는데 우리인도자가 우리인적사항을 제출하는가본데,쉽사리 통과가 된다. 지난날에는 초소병이 무장한체 차안에 들어와 노려보듯 하든 옛적, 가슴이 섬찍할정도로 森嚴하든 분위기와는 사뭇 틀리다. 

제2땅굴 (3)


1973 年 11 月 20 日 6師團 兵士 이명이 地下의 爆音을 듣고 上府에 보고하면서 그존재가 확인됬다. 이 땅굴은, 鐵原북쪽 13 Km지점 으로, 軍事分堺線 남쪽 1.1 Km 까지 뻐쳐있었다. 그 크기는 높이, 2 m, 폭이 2.1m , 깊이 50-160 Meter 규모이고, 軍人 16000 명이 한 시간에 통과할수있다고 보고되있으니 ( 다른 보고에 의하면 30,000 명이 1 時間에 통과)군사적으로 이용됬으면 그 파괴력이 놀랄만 하다. 땅굴에 들어갈때는 모두 안전헬맷을 쓰고 들어갔으며 허리를 조금 구부리니 運身하는데는 지장이 없었다. 이周圍에서는 사진찰영이 금지된것이외에는 분위기는 이완되있어 어느 관광지나 다름이 없으니 와볼만한곳이었다. 군데군데 안내, 설명서가 있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입구에서 600 Meter 쯤 들어가니 넓은 광장이 있는데 이곳이 北韓軍의 숙소, 휴식공간으로 이용됬을 장소이다. 
이장소를 파해처 나르는 岩石, 흙덩어리가 莫大할테인데 땅굴파기 초기에 발견되지않았다는게 미심적하기는 하지만 공식 확인일정은 75.2.25 로 기록이 되어있다. 
제1땅굴은 그전에 發見되어 以北의 意圖는 잘알려지지않았는가 싶다. 제3, 4 땅굴이 후에 발각되었는데, 以北이 얼마나 집요하게 인적, 물적 자원을 투입했는지 짐작이 간다. 
이곳이 관광지역으로 탈바꿈하리라고는 以北에서는 꿈에도 꾸지못했을터이니 自由를 즐길수있는 우리가 얼마나 좋은지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굴안에는 습기가 있기는 해도 통풍 관리를 해서 잘 보전되어있고, 군데군데 친절하게 전등이 켜있는데도 있어 원래 用圖와는 다른 自由의 전시장이 될만하다. 

땅굴다음으로 “철원 평화전망대’ 에 들려 비치된 망원경을 통해 非武將 地帶를 관찰했는데 半世期以上 無人地境이었기에 Jungle 같은 환경을 기대했는데 材木에 쓸만한 나무는 볼수없고, 작은 잡목만이 시야에 잡혀 실망스러웠다. 이런곳에서는 큰 檎獸가 숨을만한 숲을 이루지 못하지않나 싶다. 이곳의 地質이 밬해서 大木이 자랄수 없는지도 모르겠다. 
멀리 以北의 “宣傳 마을”은 성냥갑정도로 보이는데 이정도로는 어린아이도 속이룻 없을게다. 


두루미관

나에게는 아주 반가운 博物館이었으며 내祖國이 自然環境에도 유념할 여유가 있는 잘되어가는 증거이기도 했다. 우리를 案內, 設明해주는 아가씨도 씩씩했고 인상도 좋았다. 건물도 곡선이 많은, 흰색건물, 실내장치는 칸막이가 없이 한곳에서도 모두 볼수있어서 친근감이 들수있도록 전시되어있었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도시에 흔하지않은 현대적인 건물이다. 
Peter Matthissen 이 전세계에 알려진 15種의 두루미를 修道者처럼 찾아다니는 歷征을 기록한 “The Birds of Heaven”( 2001) 을 출간, 두루미의 生態, 優雅, 勇氣를, 進化의 象徵的 意味를 알려줘 卽時 同好人의 讚謝를 받았다.
그가 우리나라 鐵原지방에 와서 두루미, 재두루미, 흑두루미 를 관찰한것도 책에 기록되어있다.
美國같은 큰나라에도 2 종, Sandhill Crane, Whooping Crane 박에 없는데 우리는 3 종, 운이 좋으면 4종이 찾아오니 자랑스럽다. 
계절이 일러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剝製된 두루미를 보며 하늘과 땅을 울리는 그소리를 상상하는것으로 만족할수맊에 없다. 책의 前序를 인용하면, 

“ When we hear his call we hear no mere bird. We hear the trumpet in the orchestra of evolution. He is the symbol of our untamable past, of that incredible sweep of millennia which underlies and conditions the daily affairs of birds and men.”
Aldo Leopold, “Marshland Elegy” 1937 “ (2)

두루미외에도, 뜸북새, 부엉이, 기러기,박새,너구리, 멧되지등 이지역에 서생하는 생물을 剝制, 展示해 볼만하였다. 時間이 촉박해서 충분히 감상할수없어 다음기회로 미루고 이자리를 떠날수밖에 없었다. 

孤石亭 (3)

두루미관을 뒤로두고 京元腺의 중간지점인 月井里 驛舍에서, 暴擊으로 파괴된 객차 잔해가 그대로 남아있는게 볼거리였는데 새삼스래 나라가 두동강이 났음을 想記해줘 이루지 못한 可能性을 않타깝게 한다. 
이곳다음 “鐵原郡勞動黨舍” 는 이곳을 다녀가는 관람객은 꼭 들려가는 곳인가본데 그意圖는 알만하다.

이고장의 名勝, 孤石亭을 보기위해서는 점심은 기다려야 하겠다. 이곳말에 의하면 新蘿 眞平王때 10 평정도의 樓閣을 이곳에 지었다하며, 高麗 忠肅王이 놀이했다는 곳, 이제는 이곳 전체를 아울러 孤石亭이라고 하는데 어린이 놀이터, 잔디밭, “林巨正” 동상도 있어 잘 꾸며 놓았다. 漢灘江 가운데자리여서, 물, 화강암, 숲, 공터가 있어 가희 와서 시간을 보낼만한곳이었다. 임꺽정이가 官軍에 쫏겨 여기서 숨어지냈다는 얘기는 洪明熹의 冊에는 쓰여있지 않았다니 이곳주민의 愛鄕心의 소산이 아닌가 한다. 깨끗한 강물이 멀리서 招待 하는듯 했고, 風景이 좋아 사진 찍을게 많았지만 
점심시간이 훨씬 지났으니 많은 볼것을 놔두고 길을 재촉, 鐵原市內 미리 예약한 음식집으로 갔다. 점심은 애운탕으로 통일해 주문했는데 그 맛이 일품이어서 지금도 기억에서 살아지지 않는다. 내가 어렸을때, 물고기병을 들고 동네 내물가에서 잡은 밋물생선을 고추장에 풀어 국물을을 만들어 먹든 그 맛이었다. 

胃와, 味覺을 충족시켰으니 서울로 되돌아가는일이 남았는데 여기서부터는 交通의 締症이 극심했지만 來日이 여유있으니 뭣을 두려워하랴 싶다. 짧은 가을햇볓은 금새 져서 서울 목적지에 도착했을때는 아주 어두웠다. 계획에는 없었지만 떠나는 아쉼을 이길수없어 다시 모두 저녁을 같이 하자는데 아무도 거역을 못한다. 
이것으로 金祝祭의 公式行事는 마감했지만 서로 쉽게 해어지지 못해 다음기회를 約束하고 어둠속으로 서서히 제갈길을 찾아갔다. 

備考
人名尊稱은 생략
The Birds of Heaven, “ Travels with Cranes” by Peter Mattissen, 2001, North Point Press, Chapter seven; “ The accidental Paradise”
“Naver” 검색 에서 拔萃 한 내용이 많음
이번 여행은 마치 沈英補가 앞에서 끌고, 洪慈善女史가 뒤에서 밀고, 趙日均夫婦가 옆에서 챙겨줘 쉽게 할수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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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보 회장:

이번 동창회 여행이야 말로 참 좋았소이다
나는 여행후 2 주 더 한국에 있다가 11-4 돌아 왔소
이번 동창회는 면밀한 계획으로 하나도 부족함이 없이 정말 잘 준비하고 덕분에 하루 하루를 즐겁게 지냈네
총 동창회 회장이 말 하듯 우리 15회는 "극성 맞은" 동기라고 하듯 15회의 일원이 된것이 자랑스럽구려
대학교 정문에서 찍은 단체사진 어제 받고 다시 한번 느꼈네
심회장을 도운 동기들 에게, 이곳에서 연락하느라 수고한 이한수 동문 에게도 감사하네
모두 건강 하기 바라며 다시 또 즐거운 만남을 기다리며

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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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에게,

오랜만에 찬구들을 맞나 즐거운 시간을 함께 나누게 되여 무지 즐거웠습니다. 여기저기 여행하여 우리나라의
아름다음을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우리 모임을 위하여 수고한 여러친구들과 Dr. Sim 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싶습니다.

이미 다른 분들이 이번 모임에 대한 여러가지 소감을 말 했으니 나는
생략하겠습니다.

이 기회에 우리 모임에 대해서 한가지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우리 동기중 25%가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났다고 하고
우리도 다 가치 늙어가는데 10년후에 맞나게 되면 모임에 나올 수 있는 수가 많이 적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5년에 한번씩 맞나는것이 어떨까 생각하여 이 제안을 냅니다.
5년후 2016년에는 미국에서 맞나고 2021년에는 한국에서 맞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Dr. Y.C. Kim이 2016년 미국에서의 모임을 책임지고 우리 해외에 있는 동기들은 2021년에 한국에 가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건강하게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내기를 기원합니다.

정철융
미국 택사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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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

이번 금축제를 위해 수고많으시었습니다.
금축제 행사가 우리15회동기 모두를 위한 큰사업이었고, 그리고 문집 송부에 상상외로 많은경비가 들은모양이니, 우리측에서 금전적 협조를 하는것에 동의합니다. 
아무쪼록 빨리 손을쓰는 편이 보기에도 좋고 한국측에 더실질적인 도움도 되는것같습니다. 그러니 내의견으로는, 현재있는 우리 잔고에서 $2,000 가량을 기증하시도록 제의합니다. 우리의 treasury 를 더 불려야 된다면 그것은 나중에 해결해도 되겠지요.

승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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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


첨부한 메일을 잘 봣습니다. 
현재 이회장이 간직하고 잇는 4천여불의 회비는 이재승회장부터 역대회장이 개인경비를 모임에 사용하고 유사시 사용할여고 한것으로 
알고 잇습니다. 언제가 유사시냐? 바로 지금이 그 돈을 사용할 시기가 아닌가 합니다.
제 개인의견으로는 한국측에 필요한 금액을 그 돈에서 절달 해 주시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유홍 (11/1/11 15:05) Greeley, 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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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축제에 참가하신 동기여러분 그리고 어부인 여러분 정말 반갑습니다.

충심으로 환영합니다.

공식행사가 조금 길어지는 바람에 시장하다고 호소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만, 이러한 금축제가 또 오고 또 오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조금만 참으시고 축사를 간단히 하겠습니다.

시간이란, 아무리 귀하고 아쉬워도 소유할 수는 없는 것 허나, 값지게 사용할 수는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인생 전반기를 정체성 확립을 위해 불철주야 피나는 노력과 땀 흘려 일해 왔고 소중한 시간을 값지게 활용해 지금의 위치에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지역사회에서 본분의 역할을 성실히 해옴으로 존경받고 보람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참으로 훌륭합니다. 존경합니다.

이제 인생 후반기에 접어들어 머리는 반백이 되고 얼굴에 주름살도 드리워졌지만 여러분들의 몸에서 비추어 지는 後光이 너무 강열해 주름은 보이지 않고 머리는 silvery white가 되었습니다. 남은 여정을 悠悠自適 하며 더욱 즐겁고 행복하게 건강하게 살아갑시다. 구멍을 찾아야 안식처가 나옵니다. 부지런히 움직입시다.

감사합니다.


2011 . 10 . 13


President Hotel에서 - 惠仁 지삼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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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齋 그리고 한국측 준비위원님들:

어제 (10/30) 저녁에 덴버공항에 도착 - 귀가.

영철군이 New York에 도착하니 눈이 8인치나 내렷다고 해서 걱정을 햇는데

Denver지역은 지난 화요일(10/25) 大雪이 와서 나무가지들을 작살내서

많은 지역이 정전사고들이 낫다고 해서 걱정을 햇는데 쳥명한 가을 날시에

이미 많은 눈이 녹가 없어지고 춥지않는 일기 드군요.

여러분들이 동감하는 감사/찬사 말들 대로 더 이상 첨부할것은 없지만

이젠 南齋 심영보는 常任會長으로 앞으로 더 열심히 일 해 주실것을 바람니다.

욕심인지 모르지만 누가 감히 그 이상 일을 철두철미하게 잘 하겟어요!

특히 조일균, 김진호, 주흥재, 지삼봉, 김홍도 셈들하게 감사 감사 감사!

문황행사에 참석하지도 못하고 사람들 만나고 같이 돌아다녓는대로

모두 못 만나고 와서 아쉽군요. 세종대왕능도 가봣지요!

모두 건강들 하시고 오는 55주년 & 60주년에 다시 만나기를 기원 합니다.

曉丁 드림. (10/31/11 17:50) Greeley, 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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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회장,준비위원 제위와 동기 여러분 에게:
저는 지난 27일 무사히 귀가 했읍니다. 금번 '금축제'는 진정 환상적이였읍니다. 오랜 친구들과의 재회,
모교와 조국의 발전상을 직접보고 감격했읍니다. 물 한방울 샐틈없이 완벽 하게 준비,진행 해주신 모든
임원들에게 감사하고, 특히 저의 "여동생"을 위해 배려해 주신 주흥재 반장과 심영보 회장에게 감사 드립
니다. "...we will remember those days...” -Ilsa Lund from CASABLANCA- 최공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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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보 회장; 힘든 일 치루셨습니다. "마지막이다"하고 생각하시겠지만 10년후엔 또 다른 사람이 나설리 없고 또 형이 맡게 될것입니다. 그때를 생각해 부탁할 말이 있습니다. 너무 맛 있는 음식을 준비 하지 맙시사 하는것입니다. 입맛을 버려 여기서 먹는것은 모래를 씹는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빠뜨린것 금강석축제 때는 잊지 마시고 포함해 달라는 것입니다. 행선지에 평양과 함흥을 꼭 짘어넣어 주십시요. 평양 물냉면과 함흥 비빔냉면을 먹어봐야겠습니다. 고언을 용서 하소서.

이회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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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후 제2신>

“자랑스러운 金祝祭”의 장한 기록들을 모아 주십시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라는 말을 아시지요?

우리가 이번 졸업50주년기념 “금축제”를 성대하고도 자랑스럽게 마치고 나니

그 기록들을 잘 정리해 남겨서 후학들에게 귀감이 되고 자손들에게 자긍심의

원천이 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군요.


*우선 당장 이미 약속한바 있는 ‘DVD 동영상’ “자랑스러운 금축제”(국내임원

5명의 합동선물)의 완성을 위해서도 여러분이 곳곳에서 포착한 영상들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다음에 열거하는 이번 행사의 사진, 기록 또는 자료들을 모아 주십시오.

미루면 잊혀지고 기록은 희미해집니다. 미루지 마십시오.

11월 15일 안으로 메일

simybmd@hanmail.net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 음


1. 사진 (동영상은 제외): <되도록 중복을 피해서 골라 보내주세요.>

-10월 13일의 모든 행사 중의 사진

(기념식-대강당, 그림 제막행사, 미술전 축하회, 암병원 순람, 기념만찬)

-10월 14일 ~ 20일 간의 ‘내나라 여행’ 중의 사진

-10월 21일 ~ 23일 간의 ‘문화탐방 투어’ 중의 사진


2. 이번 행사와 관련한 모든 기록 또는 자료

-여행기, 행사 참가기

-금축제을 맞은 감회, 또는 감상문

-문집 “자랑스러운 금축제” 독후감

-행사기, 행사 총괄보고서 <*이미 제출>


3. 원고 없이 행한 Speech의 원본(또는 사후 작성) 원고

-기념식 때 기념사 (박승균) <*이미 제출>

-만찬 때 환영 인사 (심영보) <*이미 제출>

-만찬 때 홈커밍 인사 (이한수),

-만찬 때 축사 (지삼봉, 이재승),

-미주 신임회장 취임인사 (김영철)


*[참고사항]

-모교 학장은 이번행사에 참여하신 모든 회원에게 행사 중 의대 본관 현관

앞에서 찍은 ‘단체사진’을 대형(A 4 크기)으로 제작하여 각 회원에게 개별

적으로 우송하였습니다.

-서울대학교발전기금에서는 ‘관악캠퍼스 투어’에 참가하신 모든 회원에게 투

어 중에 찍은 사진을 제작하여(4매씩) 개별적으로 우송하였습니다.

-이번 행사에 참여하신 모든 회원에게

모교(의대)에서는 ‘서울대학교 로고가 새겨진 USB 4G 1점’

모교동창회에서는 ‘김진호 동문의 시계탑 그림이 들어간 머그컵 1쌍’을

기념품으로 나누어 드렸습니다.

그리고 행사에 직접 참석하지 못한 회원(국내 12명, 미국 17명)에게는

각각 개별적으로 자택 우송해 드리기로 했습니다. 다만, 우편국에서

‘파손 위험 때문에 머그컵의 국제우편 접수를 거절해서’

미국에 계신 분에게는 ‘USB 4G 1점’만 우송해 드리고 ‘머그컵’은 못 보내

드린다고 합니다. (추후에라도 해당되신 분의 방한 기회가 있으면 드리기

로 약속을 했으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끝.


2011/10/30

서울대학교의과대학 제15회동창회 회장 심 영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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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동창 여러분께 드립니다.

섬세하고, 치밀하게, 우리의 "자랑스러운 금축제"를 준비하여 준

모국, 미국 동창회 임원들에게 크고 크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처럼 “자랑스러운 金祝祭” 행사에 한국과 미국에서 78 명의 회원(현

회원 총 103 명)이 여러 형태로 참여하였고, 그 중 51 명의 회원은 가족과 

함께(합해서 96 명) 기념식과 기념 만찬에도 참석하였습니다. 

이어서 진행된 금축제 기념 ‘내나라 여행(4~7일)’에는 가족 포함 71 명이 

참가하였습니다. 이런 성취는 준비위원들의 치밀하고 꾸준한 희생적 노력의 결과;

대단한 성취/성과입니다.

6박 7일간의 내 나라여행에서 목격한 모국의 발전상황은 형언을 할수 없이 놀아웠습니다.

날씨도 우리 15회동창생을 깔끔히 돌보아주셨습니다.

첫날 버스를 탑승하는 날 아침에 비가 조곰 부슬 부슬 내리고는,

서해안, 남해안 그리고 동해안으로 옮겨가는 중에 우리는 맑고 포곤한 나날을 즐기는 행운을 갖었고,

서울에도 우박이 내리고 비가 오는 기후는 우리 뒤를 따라 왔으니... 우리 15회 동문은 "행운아"였어요.

모국에 심영보 김진호 동문, 미주에 이한수 동문 그리고 국내외 준비위원의 치밀하고 희생적인 노력에 크게 감사합니다.

졸업60주년모임에 우리 한 사람도 빠짐 없이 다시 만나게 되기를, 그리고 이번 모임에 참석 못한 동문들이 꼭 참석하기를... 기원하면서...

오원환 드림. 10/3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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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동안의 문화행사 참여뒤에 닷새동안 '서울 체류' 를 즐기다가 오늘 29일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J.F. Kennedy 공황에 내리니 때아닌 폭설이 우리를 환영하더군요. 6 인치나 내렸어요. 10월의 눈은 난생 처음 인 것 같아요. 내일 아침까지 7인치나 쌓인다는 군요. 그동안 이곳에 살면서 휴가기간중엔 늘 좋은 날씨를 즐기다가 집으로 떠나오는 길에서 비를 만나곤 했는데 이번엔 폭설이 우리를 마중했어요.

심영보회장 내외는 물론 서울의 동창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김 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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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동감입니다. 정말로 자랑스러운 15회 동기의 자랑스러운 금축제였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준비단들의 오랜동안의 노고였습니다. 그 중에서 특히 심영보님의 철두철미한 준비와 정확성은 다시금 감탄과 놀람을 금할수 없었습니다. 저희들 손에 받아든 금축제 small booklet은 여행중 계속 안내받은 참고서였고 영원히 간직할 우리동기의 역사책중의 하나입니다. 그동안 쌓아놓은 7권의 기념문집과 더불어 두고 두고 기쁜 마음으로 회고하는 가보로 남아있겠습니다. 
사랑하는 동기들과의 하루하루 순간 순간을 즐겼던 우리 금축제는 우리인생에 또하나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오래남을 것입니다. 
다시금 양쪽의 준비위원님들과 훌륭한 그림으로 우리 기념문집을 장식해주신 화백 김진호님, 미주 회장으로 수고하신 이한수님과 회장단, 그리고 우리 킅라스의 제갈공명 심영보회장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필라에서 수웅, 혜원드림

Hie-Won Hann,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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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신 제 1 호
> 과연 ‘자랑스러운 금축제’였습니다.
> 처음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 붙어
> 준비에서 끝날 때 까지 마치 국제
> 원수들의 모임 같이 빈틈 없는 준비와
> 자상하고 친절한 순서는 마치 참석한
> 우리 하나하나가 고관 대작이나 된 것
> 같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자랑스러운
> 것, 영광스러운 것, 즐거운 것, 반가운
> 것 들 모두 엮어 쓰자면 한이 없겠지요.
> 심영보회장을 비롯한 재경 동기
> 준비위원들의 자상한 노력 하나하나가
> 본인을 감동하게 했습니다. 여러분도
> 동의 하리라 믿습니다. 특히 마지막 날
> 까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불편이
> 없을까 염려 하여주신 그 영부인들의
> 노력은 모든 진행의 Unsung Heros라고 아니
> 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의 자랑스런
> 업적들은 하나하나 열거 하기가
> 어렵겠지만 차츰 표출 되기를
> 바랍니다. 또한 미주동기 회장
> 이한수의 자상한 노력과 한국회원과의
> 협동은 참으로 미끄럽게 진행된 것
> 또한 고맙습니다. 오늘
> 귀국하였습니다. 차츰 좋은 기록이
> 만들어 질 것입니다. 기대 하여
> 주십시오.
> 마지막으로 여러분의 뜻을 모두 우리의
> 기록부 WEBSITE에 기록 하고 싶으니 한
> 분도 빠지시지 말고 행사소감을 말씀
> 하여 주십시오. (CWKANG@COMCAST.NET)
> WEBMASTER, 강창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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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로 감사했습니다.

수고가 많았던 심영보 회장과 한국의 동기들, 그리고 이한수.
만나보니 더욱 반가웠고...
저희들은 오늘 저녁에 우리는 미국으로 떠납니다.
또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봅시다.
물론 9988234!
손.

금축제를 마친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