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哈爾濱,Harbin) 투어](1)

 


  안중근의사의 의거 100주년(2009년)과 서거 100주년(2010년)을 맞아 오래도록 귀에 익어 온 도시 [하얼빈(哈爾濱, Harbin)]을 찾았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기대 이상의 많은 견문을 얻었습니다.



(1) 안중근의사기념관(安重根義士紀念館)-1

  안중근의사 기념실은 ‘하얼빈시 조선민족예술관’ 2층에 조촐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이곳에 사는 10만 명밖에 안 되는 조선족들이 주축이 되어 꾸며놓은 기념관의 모습에서 그들이 이미 100년 전의 조국의 영웅을 얼마나 숭모하며 민족의 정신적 지주로 여기고 있는지를 짐작케 했습니다.

  
 
첫 전시실 중앙의 안중근의사 동상 좌대 앞에는 1909.10.26.의 의거 일자가 선명하고, 이곳을 찾은 모든 이는 여기서 차례로 증명사진을 찍습니다.


(2) 안중근의사기념관(安重根義士紀念館)-2

 
 
그리고 그간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저격 장면이 실물 크기에 가까운 모형으로 재현되어 있습니다.


(3) 안중근의사기념관(安重根義士紀念館)-3

 
 
그 밖에 안 의사의 연보, 인품과 사상, 항일운동 경력, 의거 경위, 저격 상황의 자세한 설명과 그 결과, 피체 이후의 경과와 수형생활 등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고, 특히 여순 감옥에 있는 동안 쓴 많은 휘호의 복제품들이 사방의 벽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4) 안 의사 의거현장 (하얼빈 역)-1

 
 
100년 전 ‘하얼빈 기차역’의 모습입니다 (자료 인용).
  안 의사는 당시 이 역 구내에 있는 휴게실에서 ‘이또 히로부미’(당시 조선 통감)가 타고 오는 특별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5) 안 의사 의거현장 (하얼빈 역)-2

 
 
하얼빈 기차역의 플랫폼 (지금은 귀빈승객 출입구 근처) 바닥에는 단지 안 의사가 권총을 발사한 지점과 그 방향만을 표시해 놓았을 뿐 아무런 안내표지도 없습니다.

(6) 안 의사 의거현장 (하얼빈 역)-3

 
 
이또 히로부미의 피격 지점은 네모로 표시해 놓았는데 저격지점으로 부터는 비스듬히 약 7~8m 쯤 되었고 여기에도 다른 아무런 설명 표지는 없습니다.
  자료에 보면 1945년 일본이 패주하기 전 까지는 여기에 이또의 흉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불 꺼진 밤의 역 구내 입니다.)

(7) 일본군 ‘제731부대’ 유적지-1

 
  
“세균무기 생체시험과 생체 생리시험” 이라는 전대미문의 잔학행위를 중국 땅에서 일삼은 ‘일군 제731부대’는, 그들의 온갖 죄상을 감추려고 패주하기 직전 모든 시설을 파괴해서 남은 것은 23개 동의 껍질 건물들뿐인데, 그 중에서 부대 본부로 쓰이던 2층 건물(그림)을 저들의 “죄증 전시장(罪證 展示場)”으로 꾸며 잔학상의 일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8) 일본군 ‘제731부대’ 유적지-2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 “제731 부대” 유지(遺地, 유적지) 안내’를 간략히 옮깁니다.
  731부대는 그 당시 일본의 최고 통치자의 칙령으로 세운 ‘특종부대’로서, 1935년에 ‘생물무기의 연구 시험 생산 기지로서, 그리고 일본군이 동남아 전장에서 수행하는 생물전을 연구하는 중심지로서’ 중국 하얼빈 평방(平房)지구에 세웠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을 시험재료로 삼아서 세균무기를 연구하는 등의 잔폭한 행위를 저지르는 곳이었기에 “식인마굴(食人魔窟, 사람 잡아 먹는 마귀의 굴)”의 기지 마을 이라고들 불렀습니다.
  1939~1945년 사이에 국내외의 반만항일지사(反滿抗日志士)와 무고한 백성이 3000 여명이나 피해를 당했습니다.
  1945년 일본이 전쟁에 지자 저들은 저지른 죄악상을 감추려고 도망가기 전에 모든 시설을 대규모로 파괴하고 훼손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보다시피 죄악상의 흔적은 아직도 23곳에나 남아 있습니다.

(9) 일본군 ‘제731부대’ 유적지-3

 
 
전시된 자료를 보면 살아 있는 사람을 시험재료로 해서 수행한 생체시험의 종류가 31 가지나 열거 되어 있습니다.
  ‘치명적인 실혈량(失血量)을 알기 위해 사혈(瀉血)시험’을 한다거나 ‘각종 세균에 대한 저항력을 시험코자 세균을 접종’하는 따위의 잔혹행위를 비롯해서...(다음 그림)

(10) 일본군 ‘제731부대’ 유적지-4


  
‘겨울에 야외에서 맨발을 물에 담그고 팔과 손에는 찬물을 부어가면서 송풍기 까지 돌려 회복불능의 동상이 되기까지의 조건’을 체크(그림)하는 등 저들의 죄증을 모형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1) 끝.


 

[하얼빈(哈爾濱,Harbin) 투어](2)

  하얼빈 최대의 겨울 상품은 “얼음-눈-추위” 였습니다.
  해마다 [빙등제(氷燈祭)]와 [눈 조각예술제(彫刻藝術祭)]를 개최한지도 이미 여러 해가 되었다는데, 송화강(송화강) 얼음을 깨고 [겨울 수영]을 하는 모습도 장관이었습니다.



(1) [하얼빈 빙등제 (‘하얼빈 氷雪大世界’)]-1


  
거대한 송화강(松花江)을 끼고 있는 하얼빈에 겨울이 오면 기온이 영하 20~30도를 오르내리면서 강물이 두께 2m 까지도 얼어 버린다니, 얼음 축제의 재료는 무궁무진하고 쌓아 놓아도 녹아내릴 염려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송화강 북쪽의 광활한 공지에 커다란 탁자 크기의 ‘얼음 벽돌’을 수도 없이 많이 썰어다가, 세계 각지의 유명한 건물이나 유적들을 모델로 해서 건물을 짓고 거기에 대형 막대 형광등을 넣어 “빙등제”를 완성해 놓았습니다.


(2) [하얼빈 빙등제 (‘하얼빈 氷雪大世界’)]-2

 
 
북경의 천안문을 비롯해서 콜로세움, 스핑크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보르부두르 사원, 천수각, 앙코르왓 사원, 태국의 왕궁 사원, 몽골의 파오 등 이루 다 그 이름을 짐작 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거대한 얼음집들이 넓은 공지를 채우고 있습니다.


(3) [하얼빈 빙등제 (‘하얼빈 氷雪大世界’)]-3

 
 
관람객들 역시 많이 붐볐지만 워낙 행사장 넓이가 넓어서인지 서로 부딪힐 정도는 아니었는데 다만 곳곳에 마련해 놓은 얼음 미끄럼판에서는 어린이들의 환성이 크게 들렸습니다.


(4) [하얼빈 빙등제 (‘하얼빈 氷雪大世界’)]-4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하얼빈시가 매년 120억 원(한화) 가량을 투입하지만 늘 적자를 면치 못한다면서, 세계적인 행사라는 명성과 체면 때문에 지금까지 11년째 버티며 개최하고 있다고 합니다.

(5)[태양도 눈 조각예술제(太陽島 눈 彫刻藝術祭)]-1

 
 
역시 송화강 북쪽에 있는 큰 유원지인 태양도(太陽島)의 눈 덮인 넓은 공원을 겨울 이벤트의 적지로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눈을 어떻게 다루면 이 그림처럼 거대한 조각품 벽을 완성할 수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6) [태양도 눈 조각예술제(太陽島 눈 彫刻藝術祭)]-2

 
 
시멘트로 콩크리트 벽을 치듯이, 판자로 만든 큰 틀 속에 눈을 다져 넣어, 하나의 거대한다져진 눈 덩어리를 만든 뒤에 조각가(조각 인부?)들이 올라가 위에서부터 차례로 깎아 내리고 있었습니다.
  하늘로 날아 오를듯한 날렵한 지붕 처마 끝도 그렇게 완성되는 것 같았습니다.


(7) [태양도 눈 조각예술제(太陽島 눈 彫刻藝術祭)]-3

 
 
세계 각지에서 참여한 눈 조각가들이 그들의 기량을 겨루는 경연장이기도 한데, 일부의 소품들은 이곳 대학들의 미술관련 학생들이 실습 작업한 것이라고 합니다.

(8) [송화강(松花江) 겨울 수영 쇼]-1

 
 
송화강의 두꺼운 얼음장을 네모로 떼어낸 모습은 영락없는 수영장입니다.
  ‘겨울 수영 쇼’의 선수들이 삼삼오오 나와서 차례로 물로 뛰어 듭니다.
  일부는 점프대에 올라서서, 그리고 일부는 낮은 곳에서 그대로 물로 뛰어 들어 20여 m쯤의 수영장을 헤엄쳐 건너서 맞은편으로 빠져나옵니다.

(9) [송화강(松花江) 겨울 수영 쇼]-2

 
  
개별적으로는 약 1분가량 씩 물에서 노닐다가 나와서 바로 옆에 설치된 대기 천막으로 들어가는 ‘연기’ 였는데 총 20분가량 진행된 이 행사에 참가한 선수는 남녀 각 20여 명씩으로 합해서 50명 쯤 되었고 모두들 중년 이상 노년의 백전노장 같아 보였습니다.

(10) [송화강(松花江) 겨울 수영 쇼]-3

 
 
‘쇼’라고 해도 그렇지 아침 10시의 그곳 기온이 -21℃ 인 때에 이런 이벤트를 벌이는 것은 대단한 볼거리임에 분명했습니다.
  둘러막은 펜스에는 “全國各地的冬泳健兒(전국각지적동영건아)”를 격려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고, 펜스 너머에서 구경하는 유료 관람객들은 사진 찍기에 바쁩니다. (2) 끝.


 

[하얼빈(哈爾濱,Harbin) 투어](3)

  하얼빈에는 그 밖에도 몇 가지 더 구경거리가 있습니다.
  동북호림원의 호랑이 사파리는 ‘경인년(庚寅年)’ 새해를 맞는 감회를 더욱 의미 있게해 주었습니다.



(1) [동북호림원 (東北虎林園)]-1


 
중국 최대의 호랑이 사육장이라는 이 ‘동북 호림원’에는 800 여 마리의 호랑이가 있답니다.
  종별로, 사육 연령대별로, 종호(種虎, 씨받이 호랑이)별로 ... 나누어 가둬놓고 사파리 버스로 돌아보는 벌판은 온통 눈밭이었습니다.


(2) [동북호림원 (東北虎林園)]-2

 
 
이렇게 많은 호랑이를 한자리에서 보다니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사파리 버스가 지나간 철문이 미처 닫히기 전에 이웃 영역을 넘보는 놈이 있으면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저들 본래의 우리로 몰아냅니다.


(3) [동북호림원 (東北虎林園)]-3

 
 
호랑이 한마리가 하루에 먹어 치우는 식량은 1 kg의 육류와 닭 1마리가 기본이라는데, 그래서 그런지 성호(成虎)의 크기는 웬만한 어미 소 크기만 했습니다.


(4) [동북호림원 (東北虎林園)]-4

 
 
별도의 개별 우리에는 백호(白虎, 흰 호랑이), 표범, 치타, 사자, 라이거(Liger) 등이 2~3 마리씩 각각 수용되어 있는데...

(5) [동북호림원 (東北虎林園)]-5

 
 
사자 우리 옆의 ‘라이거(Liger)' 우리에서는 제법 한참을 기다렸지만 라이거가 얼굴을 내밀어 주지 않아 상봉에 실패했습니다.

(6) [중앙대가 (中央大街, 유럽거리)]-1

 
 
이름 그대로 하얼빈에서 가장 중심에 있는 가장 번화한 거리입니다.
  ‘중국의 유럽’ 이라느니 ‘미니 모스크바’ 라느니 하는 별명을 듣는 것은 고풍스런 건물들이 유럽, 그중에서도 러시아의 건축양식을 많이 본 땄기 때문이겠습니다.

(7) [중앙대가 (中央大街, 유럽거리)]-2

 
 
19C 말, 러시아인이 중동철로(中東鐵路, 東淸鐵道)를 건설하면서 물밀듯이 유입하게 된 러시아를 비롯한 외국인들의 세력에 의해 하얼빈이 오늘날의 국제상업도시가 된 역사를 희미하게나마 짐작하게 되었습니다.


(8) [중앙대가 (中央大街, 유럽거리)]-3

 
 
큰 길 한가운데에 대형 얼음조각작품들을 연이어 진열해 놓아 하얼빈이 세계적인 ‘빙등제의 도시’ 임을 과시하였고, 로타리의 조형물 둘레에는 계절을 희롱하듯 붉은 꽃 단지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9) [중앙대가 (中央大街, 유럽거리)]-4

 
 
백화점과 고급 양품점, 그리고 ‘러시아 공예품’을 표방하는 기념품 가게들이 수도 없이 많이 늘어서 있는걸 보면 이 거리를 ‘러시아 거리’ 라고도 부르는 사연을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10) [성 소피아 교당]

 
 
20C 초, 제정 러시아 정부가 주둔하고 있던 러시아 군대를 위해 ‘군용 예배당’으로 건립한 ‘그리스 정교회 교당’으로, 지금은 그 기능이 소멸되어 ‘하얼빈 건축예술관’으로 속 갈이가 되어 있습니다. 

[하얼빈 투어] 모두  끝.


 




南齋 沈 英 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