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江陵)] 경포대(鏡浦臺)와 선교장(船橋莊) 순람                      심 영 보.

“강릉”에서 연상되는 단어들을 짚어보니... * 경포대-경포대의 다섯 달(月)-경포호반의 정자들-<풍류의 고장> * 오죽헌(烏竹軒)-율곡 이이(栗谷 李珥)-신사임당(申師任堂)-선교장-<선비 학자의 고향> * 허균(許筠)-허난설헌(許蘭雪軒)-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문학의 시원지> 등이 떠오릅니다. 지난여름(8/2~4)에 아들네 네 식구를 따라 강릉 경포대 해수욕장에 해수욕(?) 갔던 길에 잠시 그 언저리를 다시 둘러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여럿 해만에 찾은 곳들이긴 하지만 그새에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음이 눈에 띄었습니다. 우선 거리와 많은 문화유적들이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고, 곳곳에 안내소가 있어 찾는 이에게 아주 친절하였으며, 구경거리나 볼거리 먹을거리 놀거리를 비롯한 기반시설들을 많이 가꿔 놓았습니다. 둘러 본 몇 군데를 사진으로 소개합니다. (2008/8/28, 南 齋)

                                

[경포대(鏡浦臺)](62): “강릉”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정자지요. 정자 마루에 오르면 커다란 <第一江山> 편액을 비롯해서, 숙종대왕의 어제시 편액과 율곡 이이가 소년의 나이에 지은 시의 편액, 그리고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경포대에 올라 읊조린 시구들이 뺑 둘러 걸려있습니다. 마루 밖으로는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경포호수가 잔잔한 물결로 강열한 햇빛을 반사하고 있고요. 밤에 달이 뜨면 하늘과 바다와 호수와 술잔 속과 마주앉은 임의 눈동자 속 까지 모두 다섯 개의 달을 볼 수 있다고 노래한 옛 임들의 풍류를 짐작할 만합니다.

                                

[신사임당상(申師任堂像)](48): 잘 정비된 경포대 경내 한쪽에는 조선의 성리학자 율곡 이이(1536-1584)를 키워낸 현모양처의 표상으로서의 어머니이자 초충도(草蟲圖) 등 국보급 서화를 남긴 신사임당의 좌상이 있습니다.

                                

[해운정(海雲亭)](70): 경포호 주위에는 오랜 세월에 걸쳐 아주 많은 정자들이 지어졌다는데 지금까지 남아 있거나 최근에 와서 복원된 것만 해도 여남은 개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 중의 하나가 이 그림의 해운정인데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1607~1689)의 현판과 마루에 걸린 명나라 사신이 써준 “경호어촌(鏡湖漁村)”의 편액이 특히 눈에 띄었습니다.

                                

[경호정(鏡湖亭)](47): 경포호 주위에는 이 정자 말고도 방해정(放海亭), 금란정(金蘭亭), 상영정(觴詠亭), 해운정(海雲亭) 등이 큰길가에 인접해 있어서 쉽게 둘러 볼만 했습니다. 그 중의 한 정자에서는 이 정자들을 관리하는 강릉시 직원도 만났고요.

                                

[월파정(月波亭)](41): 이 정자는 경포호 한복판의 “새바위” 위에 지어진 것으로 접근하는 방법이 없어 그저 멀리서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교장(船橋莊)](85):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고택(古宅)으로 지금도 효녕대군(孝寧大君)의 후손들이 살면서 300년을 지켜온 문화유산 입니다. 99간의 저택과 넓은 정원 그리고 연꽃 만발한 연못과 그 한 쪽 끝에 자라 잡은 별당 정자 [활래정]. 이 [선교장]이 우리나라 3대 고택의 하나로 꼽힌다는 말이 그럴 듯 했습니다.

                                

[열화당(悅話堂)](87): [선교장] 입구의 <선숭유거(仙嵩幽居)> 현판을 바라보며 안채로 들어서면 안채주옥-서별당-동별당-열화당(큰 사랑채)-행랑채-연지당---등 건물들이 미로처럼 이어져 있습니다. 우리를 안내한 문화해설사의 설명에 의하면, 큰 사랑채 [열화당]은 선교장 장주의 거처로서 온 집안의 식구들이 터놓고 정답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4방의 벽을 모두 문으로만 꾸며 언제고 활짝 열어 제킬 수 있게 지었다고 합니다. 또 그림에서 “햇볕 챙” 처럼 밖으로 내어 지은 덧챙과 기둥은 구한말에 교유하던 러시아 영사가 이곳을 다녀간 기념으로 자기나라 자재를 들여다가 지어준 것이라고 합니다.

                                

[활래정(活來亭)](91): 연꽃 만발한 연못가에 한발은 뭍에 얹고 또 한발은 물에 담그며 "ㄱ“ 자로 지은 활래정은 이 연못의 물이 끊임없이 새로운 물로 환류 된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랍니다. 그러나 그 이름보다도 이 정자의 품새가 손님을 맞아 품위 있게 접대하고 때로는 더불어 풍류를 즐기기에 썩 잘 어울릴 것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해설사는 강조합니다. ”장지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면 그것이 바로 한 폭의 그림이 아니냐“ 고.

                                

[월하문(月下門)](96): 선교장 밖에서 활래정 쪽으로 바로 들어가려면 거치는 문입니다. 작은 일주문의 양쪽 기둥에는 각각 오언주련(五言柱聯) 하나씩이 걸려 있는데 그 글귀가 눈에 익습니다. “조숙지변수(鳥宿池邊樹)”<새는 연못가의 나무숲으로 잠자러 들어가고> “승고월하문(僧敲月下門)”<스님은 잠자리를 찾아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린다> 바로 <퇴고(推敲)>(글을 지을 때 거듭해서 다듬고 고치는 일)의 고사성어(故事成語)를 낳은 당(唐) 시인 가도(賈島)의 시귀(詩句)의 일부입니다. 일주문 이름을 유명한 시 구절에서 따왔다는 점이 절묘합니다.

                                

[매월당 김시습기념관(梅月堂 金時習紀念館)](74):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은 그저 생육신의 한분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만난 그의 기념관에 가보니 조선 초기의 학자이자 대문장가 였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체 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의 작가라는 것도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강릉시가 허균*허난설헌*매월당을 내세워 강릉을 “문학의 시원지”라고 하는 사연을 알 것 같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