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오릉 (西五陵) (1)    (2)

김진호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龍頭洞)에 있는 조선시대 왕실의 무덤 사적 제198호 - 지정연도 1970년 5월 26일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 2009년 6월 30일
    서오릉은 풍수적(風水的)인 길지(吉地)에 왕실의 족분(族墳)을 이룬 경릉(敬陵)·창릉(昌陵)·익릉(翼陵)·명릉(明陵)·홍릉(弘陵)의 5능.
5능 외에 명종(明宗)의 첫째 아들 순회세자(順懷世子)의 순창원(順昌園) 이 경내에 있으며 최근 숙종(肅宗)의 후궁 장희빈(張禧嬪)의 대빈묘(大嬪墓)도 경내에 옮겨 놓았고 영조(英祖)의 후궁인 영빈(暎嬪) 이씨의 수경원(綏慶園) 도 1968년 신촌에서 옮겨 놔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40기의 조선왕릉이 등재되었다니 우리 조상의 유산 '조선왕릉'을 좀 살펴보자 우선 가까운 곳 서오릉으로 !


도티병원 진료 없는 오전을 이용하여 찾아간 서오릉은 조용하고 가끔 걷기운동 나온 사람이 눈에 띄어


1. 경릉(敬陵)    세조(世祖)의 세자 장(璋:德宗)과 그 비(妃) 소혜왕후 한씨(昭惠王后 韓氏)의 능 홍살문( 弘-門 )에서 저편 정자각 (丁字閣) 까지 이르는 돌길을 참도(參道) 라 불러
홍살문은 원래 紅箭門 이라 쓴 것인데 가운데 글자를 잘못 읽어서 생긴 해프닝! 홍살문은 악귀를 쫓는 붉은 색으로......


서오릉에서 수복방(守僕房)이 남아있는 곳은 경릉 뿐
*수복방: 능을 지키는 수복이 지내던 곳
수복방 뒤로 비각이 보여
경릉외의 능에는 수복방 터만 남아





아담한 비각 들여다 보면


경릉 비문 朝鮮國 德宗大王敬陵 昭惠王后附右岡


2. 창릉(昌陵)    덕종의 아우인 예종(睿宗)과 그 계비(繼妃) 안순왕후 한씨(安順王后 韓氏)의 능    여기 참도는 아주 완만한 경사로 평지와 다름 없어


참도
     왼 쪽 높은 곳이 혼령이 걷는 신도(神道)      오른 쪽 낮은 곳이 왕이 걷는 어도(御道)      여긴 약간 경사가 져 몇 개의 계단을 만들어


3. 익능(翼陵) 숙종왕비(肅宗王妃) 인경왕후 김씨(仁敬王后 金氏)의 능이다.
   홍살문 들어서자 오른 편에 있는 4각형의 돌판이 있는데, 이것을 배위(拜位) 또는 판위(板位) 라고도 하여 능행(陵幸)에 온 왕이 선대왕을 위해 절하는 장소



배위(拜位) 배위는 판위(板位), 어배석(御拜석) 망릉위(望陵位)라고도 해    넓이는 약 한 평 정도 (홍살문 오른편)    저 멀리 보이는 작은 건물이 비각(碑閣)


4. 명릉(明陵)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 민씨(仁顯王后閔氏), 그리고 제2계비 인원왕후 김씨(仁元王后金氏)의 능.      1701년 인현왕후가 죽은 뒤에 이곳에 묘지를 정하고 명릉이라 칭      1720년 숙종이 죽자 이곳에 나란히 묻어      1757년 인원왕후의 상을 당하여 그 우강(右岡)에 묘를 쓰게 됨으로써      숙종과 인현왕후의 쌍릉과 함께 동원이강(同原異岡)을 이루게 돼
   *岡 = 산등성이강


5. 홍릉(弘陵) 영조의 원비(英祖元妃) 정성왕후 서씨(貞聖王后 徐氏)의 능     영조는 왕후의 택조(宅兆)를 정하면서 장차 함께 묻히고자 허석(虛石)의 제도를 쓰고     능상석물(陵上石物)은 쌍릉(雙陵)을 예상하여 배치     현재 홍릉 우측의 공간은 바로 이것으로     영조의 능이 동구릉(東九陵)에 자리잡게 되자 빈 채로 남아


창도는 보통 정자각 앞에서 우측으로 꺾였다가


다시 좌로 꺾여 정자각의 동편으로 돌아가


작은 계단을 거쳐 정자각으로 올라가 이 계단을 동계(東階) 라 하여 왕, 제관등이 오르내리는 계단 오른 발을 먼저 내딛는다고 해 (先右足) 참도와 마찬가지로 층계도 품격이 달라


서계 (西階) 축관 (祝官) 이 축문을 태우기 위하여 오르내리는 계단 선좌족 (先左足)


정자각 뒤 왼 쪽에 축문 태워 묻는 곳이 있어 예감(瘞坎) 이라 불러



"야, 네가 뭔데 그리 내려오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