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의 보배를 찾아서(3)]    심영보




(5) 홍도(紅島)와 흑산도(黑山島) <전남 신안>
<홍도 1>
서해바다의 관광보물창고랄 수 있는 홍도는 목포에서 쾌속유람선으로도 4시간은 족히 걸리기 때문에, 그리고 지형적 악조건과  <해상국립공원>이라고 하는 족쇄 때문에 관광객을 위한 시설이나 기반의 발전에는 한계가 있어 보였지만, 그곳 천혜의 자원은 아무에게도 훼손 당하지 않은 채로 의연히 우리를 마중하고 있었습니다.




<홍도 2>
소형 유람선을 타고 섬을 한 바퀴 도는 한 시간 남짓 동안에 만나는 기암괴석들은 혹은 촛대 같이, 혹은 거북이 같이 보는 이가 이름 붙이는 대로 그 형상을 달리하며 우리에게 다가 왔습니다.




<홍도 3>
떡시루를 엎어 놓은 듯한 층층이 쌓인 바위 덩어리는 조물주의 무한대한 조화능력을 보여 주는 듯도 하고




<홍도 4>
누군가가 [독립문]이라고 이름 붙여 놓은 이런 경승(景勝)들은 수도 없이 이어져 있어서 홍도가 내세우는 <33경(景)>으로도 모자라지 않을까 싶습니다.




<흑산도 1>
홍도와는 쾌속선으로 15분 남짓의 거리에 있는 흑산도는 섬도 훨씬 크고 인구도 몇 배나 더 많으려니와 아늑한 앞바다에서 양식업을 활발하게 영위하고 있었습니다. 작으마한 언덕 위 [상라정(象羅亭)]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다를 덮은 그물망-양식장(養殖場)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불러 오는 듯 했습니다.




<흑산도 2>
흑산도는 우리의 역사에서 여러 가지 인연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손암(巽庵) 정약전(丁若銓)의 [자산어보(玆山魚譜)]가 여기에서 집필되었다는 사실은 오늘날의 많은 사계 학자들을 감탄하게 하는 재료가 되고 있습니다. 조선 후기의 학자 정약전(1758~1816)이 이곳으로 유배되어 와서 사망하기까지의 16년 동안에 이 지역 수역에서 잡히는 어종(魚種)들을 망라해서 형태와 생태를 관찰하고 분류 기록해 놓은 필사본 책인데 이곳 [자산문화전시도서관]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6) 미황사(美黃寺)와 땅끝마을 전망대 <전남 해남>
<미황사>
달마산(達摩山) 아래에 있는 미황사는 대흥사(大興寺)의 말사인데 그림에서 보는 대웅보전(大雄寶殿)은 비록 단청(丹靑) 조차 갖춰지지 않았지만 그 전각의 천정과 대들보에 1천좌의 불상이 그려져 있다 해서 보물(제947호)로 지정되어 있고 그래서 그 뒤편의 응진전(應眞殿, 보물 제1183호)과 함께 미황사의 자랑꺼리가 되고 있습니다.




<땅끝마을 전망대>
우리나라 육지 중에서 위도가 가장 낮은 곳(북위 34도 17분 38초 랍니다) 곧 한반도의 최남단 지점이 바로 해남의 갈두리(葛頭里) 땅끝마을 입니다. 이제는 그 곳 사자봉(獅子峰) 꼭대기에 엘리베이터까지 설치한 빼어난 4층 건물 [전망대](그림)를 지어 놓고 평지의 주차장으로부터 모노레일을 타고 오를 수 있게 가꿔 놓았습니다.




<갈두리 포구>
전망대 위에서는 갈두리의 작고 조용한 마을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불현듯 이미 오래전에 이곳에서 새벽 해돋이를 맞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南 海 迎 新 (남 해 영 신) 남해의 새해맞이
半島土末南海岸 (반도토말남해안) 남해안 땅 끝 마을
人波雲集迎新旦 (인파운집영신단) 새해맞이 구름 인파
曉天日出光明輝 (효천일출광명휘) 찬란한 태양 빛이 새벽하늘 가르니
四界暗渾皆霧散 (사계암혼개무산) 온 누리 어둠과 혼돈 안개 잦듯 스러지네

(‘99.12. 남해, 갈두리 사자봉에서)

(3) .




南齋 沈 英 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