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풍 성지 ...(1)    연풍성지 ....(2)

김진호



연풍: 중부내륙고속국도 로 가면 서울서 2시간 남짓         괴산에서 동쪽으로 20 킬로
연풍지도 보기:
http://local.paran.com/map/mapsrch.php?X=288793&Y=362847&MapLevel=5&mapType=0



소백산, 문경새재, 속리산 잇는 줄기에 위치한
산간지방



연풍초등학교 옆에 연풍성지 자리잡아




성지입구에 있는 이것 교수형 형구돌(刑具-) ...설명은 뒤에

천주교 연풍성지는 조선 정조(正祖) 15년(1791) 신해교난(辛亥敎難) 이후  연풍땅에 은거하여 신앙을 지켜가던 교인 추순옥(秋順玉), 이윤일(李尹一), 김병숙, 金말당, 金마루 등이 순조(純祖) 1년(1801) 신유교난(辛酉敎難) 때 처형당한 자리에 1974년부터 천주교회에서 성역화한 곳




그 옆에 있는 성지연못 3월인데도 아직 덜 녹은 얼음장



눈에 띄는 연풍 성지 상징 기호 네개의 원 모양: 연풍 순교 터에서 발견된 교수형 형구돌 상징 자색의 커다란 십자가는 십자가 문양의 제단을 안에 사방으로 누워있는 사람들은 산 제사로 봉헌된 순교자를 상징





조용하고 넓은 마당에 먼저 눈에 띄는 것은 8.5 미터 되는 삽자가상




두팔을 벌린 예수입상은
부라질 리오데자네이로의 산상 예수상과 흡사





성모님...남자의 얼굴로 보이는 건 나의 착각?




그런것 개의치 않고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




이 성모님은 여성스런데....




사도 요한의 순교현양비




다섯 성인과 반석 다섯 서인: 병인박해 때 내포지방에서 선교-순교한
   다블뤼 주교
   오메르트 신무
   위앵 신부
   장주기 요헵 회장
   황석두 루카 회장

반석: 이들이 서울로 압송될 때 그리고 다시 갈매성지로 갈 때 앉아서 쉬던 바위
      (지금은 절두산 성지에 있다고...)




위 다섯 성인 중 하나인 황석두 루카 입상이 따로 있어 그는 바로 이 연풍 태생

황석두 [黃錫斗]
  1813년 연풍에서 태어났다. 신부가 원이었으나 결혼한 이유로 교황청에서 신부 서품이 허락되지 않았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고 당시 동고동락하였던 다블뤼 주교, 위앵 신부, 오메트르 신부가 체포되자   자신도 스스로 동행을 자처하여 서울로 압송되었다.   서울에서 효수형에 처해질 예정이었으나 당시 명성황후의 생일이라는 이유로 서울에서 처형될 수 없게 되자   충남 갈매못까지 끌려간 후에 3명의 신부와 함께 효수되어 순교하였다.
    




황석두 회장의 묘 후손들이 이렇게 근사한 묘를 만들어준 모양 본인이 나와서 보면 좋아할까 쑥스러워할까




한국 초대 추기경인 노기남 추기경의 입상도 있어




이 지방에서 3개나 발굴되었다는 형구돌 천주교를 믿는다는 죄인(?)의 목에 밧줄을 걸고 돌의 구멍으로 밧줄을 넣어 뒤에서 땡겼다고 ...(끔찍)
 


연풍향청 [延豊鄕廳]   충북문화재자료 제13호
본래 조선 초 지방관의 행정을 보좌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던 자치기관으로 유향소(留鄕所)라고 하였다. 1489년(성종 20)에 부활되어 향청이란 이름으로 개칭하고 지방관의 감독하에 운영되었다.
연풍향청은 1910년 국권피탈 후 일제강점기에는 천안헌병대충주관구연풍분견소 괴산경찰서풍주재소 괴산경찰서연풍지서 등으로 사용되어 왔으며, 1963년 3월부터는 천주교 연풍공소(延豊公所)로 사용하고 있다.
  (계속)